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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청주YWCA사무총장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여성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도 많다. 주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아서, 속해있는 집단을 지키기 위해서, 성폭행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주변의 반응을 생각하느라, 또 다른 불이익을 받을까봐, 아주 오랫동안 말하지 않아서, 말하라고 격려 받지 못해서 등의 이유가 각자의 상황에서 수십가지 일 것이다.

얼마 전 지속적인 스토킹을 당해 상담을 의뢰했던 필자의 지인은 이런 세상이 올 줄 몰랐다고 눈물을 떨구었다. 평상시 그리 당당하고 자신만만 했건만, 집요하게 괴롭히는 남자사람의 힘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피해사실을 간혹 들어도 무심하게 지나쳤던 나의 태도는 그 분에게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지난 1975년 배봉기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최초로 증언했고 이후 16년이 지난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역시 피해 사실을 밝혔다. 그 당시 할머니들의 증언이 널리 퍼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 사회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여성의 발화가 여성운동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정작 지인의 말하기에 무심했던 필자의 태도는 불편한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침묵과 다르지 않다. 말하기에는 듣는 사람의 존재 여부가 중요하다

발화, 클로즈업된 입을 통해 나오게 되는 말이 좀 두렵다. 애써 덮어두었던 그 말들이 이제껏 유지해온 일상의 평온을 깨뜨릴 것 같다.

말하는 여성은 왜 도발적인가? 도발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남을 집적거려 일을 돋우어 일어나게 함'이라고 적혀있다. 여성의 말은 조용하고 심지어 평온하다고 느껴지는 일상에 누군가 '쨍'하고 접시를 깨뜨리는 듯한 불편한 감정을 준다. 그래서 여성의 말과 이야기는 삭제된다. 남자사람들이 구축해 놓은 기존 인식과 질서에 여성들이 말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질서를 향한 도발이며, 절박한 설득의 과정이다

여성운동의 역사는, 이렇게 말하고 깨뜨리며 기존 삶에 불편함을 주면서 길을 만들어왔다. 여성참정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여성들, 무명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축첩반대운동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여성들, 지금은 빛 바랜 듯 흑백사진에서 만날 뿐이지만 피켓을 들고 우르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우리 선배들의 소리가, 그 외침이 아직도 우렁차게 들리는 듯하다. 상식을 깨고 '나' 곧 '여성'의 시선으로 말한다는 것, 여성들의 말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은 나와 세상을 소통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이다. 여성들의 말하기 욕망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변화는 진행중이다.

개인들로 촉발된 '미 투 운동'이 '사회적 변혁운동'으로 이어질 때, 한국사회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저항적 소리를 내는 개인들의 소리가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만 함몰되지 않고 그 개인들을 넘어서서 사회의 변혁운동으로 이어졌을 때, 비로소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 되었다.

깜깜한 숲속을 걸어야 하는 일이 있다. 그 길을 혼자서 걸을 때는 굉장히 무섭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걸으면 무섭지 않다. '미투(나도 그래 MeToo)'는 '위드유(너와 함께 WithYou)'와 함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새로운 질서를 향해 함께 걸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곳이 아니라, 힘에 상관없이 누구나가 다 소중한 사람으로 귀하게 여겨지는 곳이어야 한다. 미투 운동은 우리가 이런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들어라! 우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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