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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중

전 단양교육장·소설가

김종필 전 총리가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두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었지요. 부인 박영옥 여사가 타계하고 난 뒤 바로 작성한 모양인데 총 121자였답니다. 한글과 한자를 혼용했는데 그 내용을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는군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함이 없기에 시무사(思無邪)를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경제가 궁핍하면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기에 무항산이무항심(無恒産而無恒心)을 치국(治國)의 근본으로 삼았다. 나이 아흔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이 없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평생 반려자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묘비명을 거론하면 또한 떠오르는 것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장,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입니다. '필생즉사필사즉생(必生卽死必死卽生).' 묘비명에서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했기에 명량대첩은 세계 해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승리의 기록이 되었겠지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 말은 현금에 이르러서도 정치인이나 운동선수에게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고 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묘비명도 눈길을 끕니다.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 20세기 세계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헤밍웨이. 생전 성격이 강인하고 거친 부분이 많아 1차 세계대전에 참여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의 작품을 쓴 그는, 자신의 작품처럼 호탕하고 강인한 느낌이 물씬 나는 묘비명을 남긴 것입니다.

'내 무덤을 찾아오는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헤밍웨이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구스타프 말러의 묘비명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겸 작곡가였던 그는 평생 지휘자로서 이름을 떨치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묘비명에서도 그의 자신감이 물씬 풍겨납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이 비석 밑에는 디오판토스가 잠들어 있소. 그의 생애를 수로 말하겠소. 일생의 1/6은 소년시대였고 1/12은 청년시대였소. 그 뒤 다시 일생의 1/7을 혼자 살다가 결혼하여 5년 후에 아들을 낳았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 생애의 1/2만큼 살다 죽었으며, 아들이 죽고 난 4년 후에 비로소 디오판토스는 일생을 마쳤소.' 3세기 후반 그리스의 수학자였던 디오판토스의 묘비명입니다. 그의 '산수론'은 아라비아어 문화권은 물론 라틴어로도 번역되어 대수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대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사람답게 묘비에까지 수학문제를 출제한 것입니다. 문제를 풀면 그가 몇 살에 일생을 마쳤는지 알 수 있겠지요. 풀이를 해 보면 정답은 84세라는군요.

미국 문단의 가장 거칠고 이색적인 작가였던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도 참으로 특이합니다. '애쓰지 마라.' '열정 가득한 미치광이'라 불리던 그는 술과 도박, 섹스와 폭력, 세상의 부조리 등 거친 삶을 가식 없는 문체로 써냈습니다. 그는 생전에 작가로 정착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하급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거나 우체국에서 우편물의 분류와 배달일을 하며 시를 썼다는군요. 이처럼 파란만장한 삶 끝에 아주 짧고 명쾌한 묘비명 한 줄을 남긴 것이지요.

묘비명을 죽 훑다보니 동양과 서양의 묘비명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엄숙함과 엉뚱함. 필자는 서양인의 것에 더 호감이 가는군요. 그들의 시선으로 보면 산다는 것이 별거 아니다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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