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정희

수필가

골짜기는 완전 별천지다. 멀리 물결처럼 일렁이는 산봉우리와 함께 청옥색 하늘도 푸르다. 빗자루로 쓸어도 될 만치 자욱한 골안개와 바위 틈 어우러진 잔솔나무 몇 그루. 갑자기 세상 모든 게 사라지고 바람 소리만 들려온다. 엊그제 폭우가 쏟아진 뒤 옥같이 맑은 시냇물도 정겹다. 불현듯 여기 이대로 눌러 살면 참 좋을 것 같은 생각. 보이는 것은 하늘과 숲과 개울 뿐 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모든 시름이 덜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봄에는 진달래가 어우러지고 지금은 온통 녹음에 뒤덮였으나 눌러 살면 과연 아름답게만 보일지 그도 미심쩍다.

인적 드문 골짜기는 철철 계절을 담은 채 그야말로 경관 좋고 공기 맑고 그림 같은 전원생활이 될 것 같지만 풍경은 잠깐이다. 경치가 좋을수록 지대가 높고 결국 밭농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 여기 살던 사람들의 정황이 그랬을 거라는 의미다. 끝내는 먹고 살기 위해 돌밭을 후벼 산밭이라도 일궈야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근심을 덜자고 나온 게 오히려 부추기는 상황이 된다.

요즈음에야 그렇지는 않아도 우선은 교통이 불편하다. 목마르면 샘물을 떠먹고 무료한 날은 발 담근 채 쉴 수 있지만 힘들 때는 그도 일없다. 그나마 이런 풍경 때문에 근심이 덜어지면서 마음이 가라앉고 위로를 받을 테니 한편 다행이다. 돌아가면 다시 또 심란해지겠지만 개울물에 시름을 띄워 보낼 수 있으면 그만해도 충분하다. 잠깐 마음을 추스른 뒤 힘들면 또 다시 동양화 같은 골짜기를 찾아와 풍경을 완상하며 쉬는 격이다. 마루에 걸려 있던 동양화 한 점이 떠오른다. 

거실을 치울 때마다 어김없이 들어오던 풍경화. 지줄지줄 흐르는 냇물과 온갖 잡목이 어우러진 게 눈앞의 골짜기 풍경 그대로다. 무심히 바라보면 나뭇잎을 떨어뜨리던 솔바람 소리. 오솔길의 들꽃과 조약돌도 사뭇 고풍스럽다. 반나마 뒤덮은 골안개는 소낙비 뿌리고 녹음에 덮이는 한여름 풍경이었다.

만추의 가을을 생각하면 단풍이 떠오르고 곧 이어 펼쳐질 백설의 풍경까지 첨부될 때는 저런 데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전원생활을 하게 되려니 라는 바람도 절실했다. 그것은 또 나뿐이 아닌 모두의 생각일 것이므로.

망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여백에 그려진 한 인물을 보았다. 그나마도 모퉁이에 아주 작게 그렸으니 풍경만 안쳐 놓은 산수도에서 무얼 뜻하는지 가리사니를 잡을 수가 없다. 절경을 찾는 단순한 유람객은 아닌 듯싶고 인근의 농부가 잠깐 쉬러 온 것도 같지만 거기까지 찾아올 때는 나름 걱정이 많았겠지. 제 아무리 절경도 곡절이 투영되고 인물 하나쯤 추가되면서 돋보인다는 뜻일까.

한때는 그 주인공을 화가 자신으로 보았다. 화가라면 그림의 소재를 찾아다니게 마련이다. 골짜기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가 뜻밖의 절경에 무릎을 쳤겠지. 붓을 든 채 며칠간은 행복했을 테고 그런 그림도 나올법하다. 골짜기 정경이 사뭇 예쁘게 비쳤다면 곡절 때문이었다. 마음이 편할 때는 풍경도 절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담담해 보이던 인물의 표정 또한 인상적이었다. 뛰어난 화가의 안목이라도 각다분한 삶을 피해 간 게 아니면 그런 표정의 인물을 추가하기는 어려웠을 법하다. 

눈감으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 거실의 동양화가 오버랩이 된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구태여 추가된 인물은 또 우리들 모습이고 그림을 그린 누군가도 눈앞의 비경을 소품으로 나타낸 거라면 곡절은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아름다운 비경도 곡절이 없으면 무의미한 법. 골짜기는 아름다워도 자연의 일부였던 것처럼 시련 또한 삶이라는 풍경의 여백을 장식할 수 있다. 힘들어도 살아야 될 이유를 또 한 가지 배웠다. 비경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힘든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는 것까지도….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