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희숙

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인류를 구할 공생의 세 가지 도구가 시와 자전거와 도서관이라고 했던가. 나는 그 중에 하나인 시를 부여잡고 쩔쩔 매고 있다. 인류는커녕 나조차도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를 쓰는 일은 차가운 고독과 마주하는 일이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에 벌거벗은 서늘한 나를 대면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 왜 이곳에 있으며 무엇 때문에 시를 잡고 종종거리는가.

장을 본 후 안성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시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 1박2일 서로의 시를 보면서 배움을 키워가기로 했다. 내가 안성을 향한 것은 그들과 동일시하며 위안을 받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한 시간 반을 달려 칠현산방에 도착했다. 제일 어린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백숙을 끓이기 시작했다. 오이를 가르고 파를 썰고 김치를 잘라 11인분의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을 먹고 각자 써온 시를 펼친다. 서로의 시를 보며 잘된 점을 이야기해주고 생각이 다른 점은 반론도 제기했다. 늦깎이들의 진지한 모습에 내 모습을 투영시키면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7시부터 시작한 수업이 11시까지 이어졌다. 수업을 마무리 하고 숲으로 향했다. 소리가 나면 반딧불이가 오다가 도망간다는 산방 주인장의 말에 따라 우리는 나오는 목소리를 다시 몸속으로 넣었다. 사위가 조용해지자 반딧불이가 하나둘 깜빡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떠오르는 빛은 마치 까만 도화지에 밥알을 쏟아 놓은 것 같았다. 저 화려한 혼인비행을 마치고 나면 수컷은 바로 죽는 다고 한다. 암컷도 산란 후 숨을 거둔단다. 가장 삶이 극치일 때 죽음을 향해 치닫는 것이다. 반딧불이의 빛은 냉열이다. 우리가 냉가슴을 앓듯 찬 빛을 불태우며 인생을 불태우는 것이다. 한 시간여에 걸친 반딧불이의 혼인비행이 시선을 베어갔다. 밤이 고요히 이울고 있었다. 불타던 숲은 까맣게 진화되었다. 우리는 밤을 빠져나가는 어둠처럼 슬며시 숲을 내려왔다.

다시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 맥주를 마시면서 끝없는 시의 이야기로 밤을 물들였다. 한참토론이 무르익을 무렵 난 슬며시 한쪽 구석에 이불을 펴고 누웠다.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소란한 소리가 귓전에서 웅웅 거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떴다. 그들이 왕왕거리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을 추스르고 자세히 들어보니 시심이 너무 과열된 것이다. 요지는 자신의 시에 댓글을 왜 안달아 주냐는 것이다. 서로가 원거리에 있는 동인들은 인터넷으로 서로 댓글을 달아주며 공부를 이어간다. 자신의 시의 허점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남의 시를 지적 해 주려면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을 두 세 시간 할애한다고. 그런데 댓글만 받고 다른 사람의 시에 댓글을 안 달아주는 것은 이기적인 거라고 한쪽에서 말한다. 그러자 다른 한 쪽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방안을 떠다닌다. 댓글을 달아주고 싶으나 시가 해독이 안 된단다. 그래서 댓글을 못 달아주는 자신도 너무 답답하고 가슴 아프단다. 한동안 서로 이해를 하는 듯 목소리가 잦아들고 대화가 무르익어 훈훈하다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고 한 사람은 울면서 차키를 쥐고 방문을 나서기 시작한다. 놀란 산방 주인이 차키를 감췄다. 고함소리는 고요한 새벽을 날카롭게 긋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장면이가 싶다가도 이 나이에 시 때문에 울고 웃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란한 밤이 가고 아침이 눈을 비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은 호호 하하 해처럼 밝다.

내려오는 길 보채리로 향했다. 나를 험난하지만 아름다운 길로 인도해 주신 시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다. 소주 한잔 드리고 무덤가에 핀 잡초를 뽑으며 "저 왔어요."라고 나직이 입을 떼어 본다. 일생을 시의 숲에서 반짝이며 살다 가신 선생님. 반딧불이처럼 평생 시라는 빛을 온몸으로 발산하며 사셨던 선생님. 마지막 순간에도 절정의 순간처럼 시를 쓰셨던 선생님. 돌아가시기 전 반딧불을 보기위해 선생님을 모시고 산방에 갔던 기억이 훅 스친다. 무덤을 내려오는데 반딧불이의 춤이 머릿속 가득 별처럼 떠다닌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