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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6.20 18:11:43
  • 최종수정2018.06.20 18:11:4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솝실(속마을)'을 한자로 '이리(裡里)'로 표기하거나 아니면 '속'은 음차로 하고 '마을'은 의차하여 '속리(俗里)'로 표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속리산의 어원을 찾는데도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해오는 속리산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784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라는 분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도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속세를 버리고 진표율사를 따라 입산수도하였는데, 여기에서 '속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고운 최치원이 법주사 일대의 암자를 돌아보고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멀리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멀리한다' 하고 노래한 시의 구절에서 '속리'가 유래되었다고도 하는데 이는 유래라기보다는 최치원이 속리산이란 산이름과 속리사라는 절이름에 있는 '속리(俗離)'의 의미에 대하여 자신의 소회를 쓴 것으로 보인다.

속리산은 신라 때는 속리악이라 불렀고 중사(中祀,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지낸 '대사' 다음 가는 제사)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속리산이라는 이름 외에도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속리산은 본래 아홉 개의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 하며,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문헌비고>에는 '산세가 웅대하며 기묘한 석봉(石峯)들이 구름 위로 솟아 마치 옥부용(玉芙蓉)같이 보이므로 속칭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밖에도 '광명산(光明山), 지명산(智明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자하산(紫霞山)' 등의 별칭을 가지고 있다. 한국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명산으로, 산중에는 1000년 고찰의 법주사(法住寺)가 있다. 3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지는 문장대에 서면 산 절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가 흰 구름과 맞닿는다 하여 문장대를 일명 운장대(雲藏帶)라고도 한다. 넓이는 3000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큰 구멍이 가마솥만 하게 뚫려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에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한강)으로 들어간다. 1970년 3월 24일 주변 일대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4년 인근의 화양동구곡(華陽洞九曲)과 선유동구곡(仙遊洞九曲), 그리고 쌍곡구곡(雙谷九曲)이 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불우」조에는 속리사가 속리산 서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속리산에서 속리사는 찾을 길이 없다. 다만 '달마암(達磨岩) 가에 등불 하나 밝았는데 문 열고 향 피우니 마음 다시 맑아라 혼자 깊은 밤에 잠 못 이루니'라는 고려 말기의 문신 김구용(金九容)의 시에서 절이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속리산의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한 것이며 이때는 이미 속리산이라는 지명이 정착된 이후였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 이미 속리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속리사라는 절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므로 이 산줄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평지 지역에서는 '안골, 솝말, 솝리(속에 있는 마을)로 부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솝리에 있는 절'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향찰식 표기에 의하여 '속리(俗里)'가 되고 '속리'라는 음은 자연스럽게 불교에서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의 '속리(俗離)'를 연상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속리사(俗離寺)라는 절에서 이곳 마을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솝리'라는 마을에 있는 산도 속리산이 되지 않았을까?

보은군 탄부면 벽지리에 외솔들(바깥속리들)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큰 소나무가 외따로 있어 '외솔들'이라고도 하고 속리산 천황봉 물이 삼거리에서 내려와 그 물을 대는 논이라 '바깥속리들'이라 하였다고 진해지지만 실제로 '솝리'라는 마을이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근거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속리산(俗離山)'이라는 지명은 속리사(俗離寺)라는 절과 연관지어 음은 그대로 둔채 불교 사상과 철학적 의미를 덧붙이기 위하여 '里'를 '離'로 바꾸어 '속리(俗離)'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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