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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길을 걷다 햇살이 따가워, 슬쩍 나무 그늘 속으로 몸을 옮겼습니다. 유월의 나무들이 품고 있는, 어른어른 유록빛 맑은 그늘숲은 청신한 소녀의 얼굴처럼 해사합니다. 한여름의 나무그늘은 겨울에는 만날 수 없는 새로운 땅입니다. 공기의 순환과 대기의 흐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참으로 놀라운 공간입니다. 성하(盛夏)의 계절에만 생겨나는 가히 신생의 영토라고 할 수 있지요.

밖과 안쪽의 그림자 경계에 바람은 비질하듯 나무를 흔들어줍니다. 낮의 그늘은 밤의 달빛처럼 온화한 빛을 머금은 휴식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마치 정련된 금은 불이라는 고온을 뚫고 나와야 만들어지는 것과도 같죠. 그늘은 어둠이지만, 한편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움직임'인 겁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죠.

시원한 그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있으니 비틀거리며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가 보입니다. 아직 균형을 잡지 못하여 불안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이는 넘어지려는 반대 방향으로 무심코 핸들을 꺾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아버지가 한마디 합니다.

"겁내지 말고 그냥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돌려 봐."

아버지의 안타까운 조언에도 아이는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쉬이 돌리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면 완전히 넘어지고 말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과감하게 돌리자 균형이 잡히는 겁니다. 어두웠던 아이의 얼굴이 한순간 환해집니다. 깨달음의 빛인 거죠. 아이가 그동안 가졌던 편견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립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해내지 못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반대쪽으로 핸들을 자꾸 꺾기 때문이죠. 그러면 여지없이 자전거는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겁니다.

바꾸어 말해볼까요. 넘어지는 쪽은 어려움, 불행, 두려움이라면 넘어지지 않는 쪽은 편함, 행복, 밝음이겠지요. 그러니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편하고 행복한 쪽으로 핸들을 돌리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수없이 실패를 반복하다보면 어느 순간,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지요. 그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편견의 벽을 허무는 마음이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죠.

운명(運命)이란 한자어를 살펴보면'움직일 운(運)'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운명도 정해졌기 보다는, 어디론가 움직인다는 것이죠. 아이가 넘어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는 것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그늘 쪽으로 자리하는 것도 결국 움직이면서 얻게 되는 소소한 기쁨입니다.

불경에서'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말의 핵심은 바로 움직임입니다. 색(色)에서 공(空)으로, 다시 공(空)에서 색(色)으로 마음이 이동하는 것이죠. 움직인다는 것은 변화이며 깨달음의 요체입니다. 마음의 벽을 돌파하는 순간을 여덟 글자로 표현한 삶의 정수이기도 합니다.

사막 한 가운데 작은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그 오아시스에는 두 개의 샘물이 있었죠. 첫 번째 샘물 주인은 지나가는 모든 나그네에게 물을 아낌없이 나눠주었어요. 하지만 두 번째 샘물 주인은 물을 나눠주기 싫어 샘물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어 나그네들의 접근을 막았죠. 첫 번째 샘물은 늘 맑고 깨끗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물을 자주 마시다보니 늘 깨끗한 샘물이 퐁퐁 솟아올랐던 거죠. 하지만 아무도 마시지 않는 두 번째 샘물은 그저 고인물이 되어서 자꾸만 흐려졌습니다. 첫 번째 샘물에는 낙엽이라도 떨어지면 나그네들이 치워내곤 했지만, 두 번째 샘물에는 나뭇잎들이 쌓이고 또 쌓였습니다. 바닥에 쌓이던 나뭇잎들이 마침내는 물이 솟아나는 샘구멍조차 막아버려 샘물은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마음도 다르지 않죠. 움직이지 않는 자전거는 바로설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의 유연한 움직임에서 삶의 균형도 유지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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