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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6.11 16:33:35
  • 최종수정2018.06.11 17:30:56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식초는 음식의 마에스트로(Maestro)이다. 서양음악의 지휘자처럼 음식의 맛을 지휘하기 때문이다. 중국 북송 때의 도곡이 지은《청이록》에는 "장은 팔진의 주인이고, 식초는 음식의 총관(醬八鎭主人 醋食總管也)"이라 했다.《주례》에서나 춘추 전국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여덟 가지 진귀한 음식을 더 맛있게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 식초라 하였듯이 무더위에 잃어버린 입맛을 되돌리는 식품이다.

1492년 10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식초에 절인 양배추를 먹고 오랜 기간의 항해에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송나라 때에 편찬된《몽양록》에서 식초는 '집안에 매일 빠져서는 안 될 것'의 하나로 땔나무, 쌀, 기름, 소금, 간장, 차와 더불어 아침에 일어나면 준비해야 하는 일곱 가지 일로 꼽히는 등 주요한 생필품으로 여겼다.

인류 최고의 조미료인 식초는 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고대 바빌로니아 의학문서에는 "대추야자 등으로 빚은 술을 발효시켜 식초로 만들었다" 기원전 1450년경에 모세는 식초를 아랍어로 '시에히게누스(Essiggenas)'이라 처음 기록하였으며 "포도주로 만든 식초와 독주로 만든 식초를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또《룻기》에는 "식초로 만든 음료를 받아 마셨다"고 전한다.

중국 주나라 때의《주례》에는 신맛의 장을 담당하는 혜인(醯人)이란 직제가 있어 식초는 나라에서 직접 관리하는 중요한 식품이었다. 공자가 기원전 450년에 지은《논어》에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식초를 얻고자 하자. 이웃집에서 식초를 얻어 그에게 주었다."하여 식초를 처음 기록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40년경에 쓴《역사》에서 식초마늘을 이집트 피라미드 축조에 동원된 노예들에게 먹였다고 하고, 로마 군인들은 식초와 허브를 물에 타서 만든 '포스카(Posca)'라는 음료를 마셨고,《아피츄스의 요리서》에도 등장한다. 히포크라테스가 식초의 살균 효과로 상처 소독에 사용하는 등 인류 최초의 약품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영혼론》에 식초를 기록하였으며, 고대 이집트의 전설적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식초를 건강과 미용에 썼으며 특히, 기원전 1세기경 안토니우스와의 내기에서 '달의 눈물'로 불린 진주귀걸이 한쪽(현재의 싯가 2억 원짜리)을 식초에 담아 마셨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 14세기 서양에서 발병한 흑사병의 감염을 막는 비결로 식초가 사용되었다.

6세기 중엽에 편찬된 중국의 농서인《제민요술》을 비롯해《본초강목》, 허준의《동의보감》등에서 "식초는 쓴맛이 있기에 민간에서는 고주(苦酒)"라 하였다. 순초(醇酢), 초주(酢酒), 미초(米醋), 혜(醯), 순초(淳酢)'라 부른 식초는 신라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송나라 때의《본초도경》에는 고려의 다시마 조리법에 식초를 조미료로 썼다고 기록되었다. 고려말기의 한의서인《향약구급방》에는 식초를 다양하게 이용했다면서 조선시대 세종 때부터 식초의 제조법이 민간에게 널리 전파되어 민간의 약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식초는 쌀, 보리, 옥수수 등으로 만든 곡물초인데 현미를 사용해 누룩으로 만드는 쌀 식초가 으뜸이었다. "초를 다른 말로 술"이라고 적은《지봉유설》과《규합총서》에는 쌀 식초의 제조법까지 실여있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가정에는 부뚜막에다 '초두루미'라는 식초를 발효시키는 옹기를 두고 천연식초를 만들어 사용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공업용 식초의 등장은 전통식초의 맥을 끊어지게 하였으나 근래에 와서 다양한 가양주들의 부활과 사찰 등 불교문중에서 천연 발효식품인 식초의 제조비법을 전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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