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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6.03 13:49:39
  • 최종수정2018.06.03 15:27:23

조일희

수필가

세상의 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이다.

가까스로 서울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빈 좌석을 찾아 앉으니 피곤이 몰려온다. 가는 동안 잠이라도 잘 요량으로 눈을 감아보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잇는다. 그 끝에 엄마가 보인다.

엄마가 서울로 올라갔다. 재수하는 오빠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졸지에 덩그마니 남겨진 나는 오빠만 챙기는 엄마가 미우면서도 보고 싶었다. 방학 때면 엄마를 보러 서울에 갔다. 도심 변두리 작은 방은 썰렁한 시골 내 방이나 마찬가지로 한기가 돌았다. 엄마와 오빠가 살던 연탄공장 옆 단칸방은 대낮에도 백열등을 켤 만큼 어두침침했다. 공장에서 날아오는 탄가루는 닦아도 닦아도 걸레만 까매질 뿐 방바닥은 여전히 탄가루로 서걱거렸다.

순박했던 엄마가 변했다. 가난은 시골아낙네였던 엄마를 꽝꽝 언 생선을 무쇠 칼로 내려칠 만큼 억척스럽게 만들었다. 한겨울 장바닥에서 손님들과 드잡이하는 엄마를 볼 때면 이악스러운 엄마가 부끄러웠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모습이 엄마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동상으로 벌겋게 부은 손으로 엄마는 생선을 팔아 오빠를 공부시켰다. 오빠의 성공만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여겼으리라. 당신의 짐을 나눠질 사람도 잘난 아들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엄마에겐 막내딸의 애처로운 눈빛도, 다른 가족의 안타까운 손짓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며 엄마와 나의 사이도 버름해졌다. 여느 모녀처럼 마주 앉아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은 적도 없었다. 동굴 같은 시커먼 집에서 얼른 벗어나고만 싶었다. 결혼할 사람과 내가 맞는지 어림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집을 떠났다. 결혼식 전날에 엄마가 펑펑 울었다고 이모가 나중에 말해 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의 눈물이 얼마나 짠지를.

엄마의 바람대로 오빠는 엄마의 희망이 되었고 기쁨이 됐다. 오빠의 성공 높이만큼 엄마의 마음도 붕 떴다. 행복도 잠시, 오빠가 이른 나이에 짝과 함께 외국으로 떠나자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잃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엄마 눈에 내가 보였나 보다. 수시로 나를 찾아오셨다. 반찬을 챙겨주고 살림을 들여다보는 상황이 영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던 차 내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했다. 병구완 온 엄마에게 그간 서운했던 마음을 눈물 콧물 흘려가며 거칠게 토해냈다. 엄마는 쌀쌀맞은 딸년의 가시 돋친 말을 묵묵히 가슴으로 받기만 하셨다. 당신을 여자로서 한 번 바라봐 달라고 눈물을 훔치며 말할 때 내 마음은 이미 풀어졌다. '막내야, 미안하다'는 물기 어린 한마디로 엄마와 나는 서러운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결혼은 나를 가난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하지만 다른 그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난장에서 거친 풍파를 겪었다면 나는 집 안에서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무관심으로 일관한 그의 태도, 냉랭한 시댁의 분위기가 나의 몸과 마음을 시리게 했다. 이십여 년을 마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초처럼 흔들리며 살았다.

그의 허황한 꿈이 휴지조각이 되어 날아간 후에야 알았다. 쉽게 얻은 건 쉽게 잃는다는 것을. 손에 쥔 건 어미라는 묵직한 이름뿐, 나는 시끌벅적한 장바닥에 전(廛)을 펼쳤다. 걸걸한 목소리로 사람들과 맞서는 엄마의 모습이 그토록 싫었건만, 어느 날 내가 세상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고 있었다. 허나 나도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이제 안다. 오빠라는 희망 줄이 없었다면 엄마는 고난의 세월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의 그악스러운 모습은 자식들에게 밥 한 끼 먹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이제 안다. 엄마의 눈물은 여자로서 당신 인생과 딸의 인생이 섞여 소태처럼 짜디짰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서울에 간다. 바쁘고 힘든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차려 주고 고된 하루를 얘기하는 녀석의 말을 들어주러 간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던 딸은 이렇게 엄마처럼 살고 있다.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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