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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도심을 벗어나 대자연과 마주하니 처음 세상 구경 나온 아이같이 마냥 신기롭기만 하다. 충남의 알프스요 산소의 보고라고 불리는 칠갑산 자락으로 들어섰다. 산꼭대기에서 방사상(放射狀)으로 뻗은 능선의 어슴푸레한 경계가 편안하다. 크고 작은 봉우리,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은 생명이 숨 쉬는 어머니 품속 같다. 콩밭 매던 아낙네가 허리를 펴고 맞아준다.

청양의 명물인 천장호 출렁다리 위에 서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강물에 시선을 두니 현기증이 났다. 심호흡을 해봐도 진땀이 나기는 매한가지다. 앞을 보아도 흔들흔들, 옆을 보아도 어질어질, 아래를 보면 울렁울렁 모두 다 멀쩡한 것 같은데 나만 겪는 어지럼증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때, "저기 칠갑산 꼭대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호랑이라고, 그럴 리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은 이미 칠갑산 꼭대기를 더듬어 내려왔다. 안개 속의 칠갑산은 정물화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야!"

"하하하, 엉터리."

화제가 호랑이가 되어 웃고 떠들면서 다리 끝까지 왔다.

"이크, 호랑이다."

다리 건너에 정말 호랑이가 있었다. 칠갑산의 영물이라는 호랑이 모형이.

"저런, 좀 전에 칠갑산 꼭대기에 있던 호랑이가 벌써 내려왔네."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던 목소리다. 이때를 위해 밑밥을 깔아놓은 그의 재치에 모두 즐거웠다.

놀라운 일이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내가, 200m가 넘는 출렁다리를 멀미 없이 건널 수 있었다니. 말도 안 되는 농담 한마디가 주의를 환기한 것이다.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걸 증명해 보려고 눈을 위에다 두고 산을 더듬다 보니 발아래 물결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거였다. 눈이 머무는 곳엔 마음도 있기 마련이다. 시선이 삶의 질과 방향을 가늠한다는 진리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주위를 살펴보면 비슷한 여건인데도 어떤 이는 행복을 느끼며 만족하게 살고 어떤 이는 삶 자체를 고통의 연속이라 생각하며 힘겹게 살기도 한다. 이는 시선을 긍정에 두느냐 부정에 두느냐의 차이다. 나름, 문학적 상상력으로 일상을 마주하려고 애를 쓰며 살지만, 너무 익숙하여 보편화한 그저 비슷하게 낡고 딱딱한 것들만 눈에 들어온다. 굳어진 틀을 깨고 생생함을 덧입기 위해 시선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까.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시선이다. 굳이 남의 시선을 통해 확인받으려고 눈치 볼 일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어 동화 속에 노닌다. 판타지의 세상을 오가며 미처 누리지 못한 그리운 유년을 마음껏 누리다 보면 호기심과 설렘이 가득한 천진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도 될 것이다. 공중에 나는 새를 바라보며 하늘을 나는 꿈을 꾼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조종사가 되었듯이 끝없이 넓은 바다, 출렁이는 바다를 동경하는 아이는 항해사의 제복을 입을 날이 오지 않을까. 책을 읽는 목적도 그렇다.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을 방문하여 간접경험을 얻는 재미에 푹 빠지는 게 독서삼매경이 아니던가. 그렇게 얻어진 시각으로 사물을 만나고 생생한 의미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다 보면 편협한 틀에 갇혀 있던 무력한 시선이 자유를 얻어 날갯짓을 시작하리라.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비탈길로 굴러 떨어지는 돌을 바라보면서 "봤어요, 두목? 돌멩이는 비탈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군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읽으며 조르바의 시선이야말로 신선하고 창조적인 시선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금빛보다 찬란한 청장호의 은빛 여울에 시선을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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