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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정책과장

아침 6시 40분. 따뜻한 물 한 컵과 주스 한 컵, 정확하게 반으로 자른 달걀, 나보다 더 잘 깎은 과일과 견과류로 빼곡하게 찬 쟁반이 내 눈 앞에 놓인다. 화장대에 매달려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 나에게 배달된 아침식사는 바로 아버지의 작품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출근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준비를 마치고 방을 튀어나가면 아버지는 나보다 더 빠른 동작으로 현관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잡아둔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엘리베이터에 뛰어든 나는 잊고 나온 물건은 없는지 가방부터 살핀다. 그 이후에도 거울을 보느라 정신없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그 순간, 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앞 그 자리에 계속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층까지 내려가는 몇 분 사이, 오늘도 또 후회한다. 방금 전까지도 봤던 거울을 볼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충 하는 인사가 아니라,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고 '다녀오겠습니다' 제대로 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다못해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줄 것을. 나의 출근대첩 속 든든한 후방 지원군인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있었을까 생각하면 한숨과 함께 나를 쥐어박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내가 며칠간 출장이나 여행 끝에 집에 들어설 때면 함박웃음과 함께 악수를 청하신다. 딸에게 무슨 악수라니,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버지에게 그 악수는 다 큰 딸에 대한 가장 큰 애정표현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그런 인사가 당연한 듯 지냈다는 사실을 지금 글을 쓰면서야 깨닫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일본영화가 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6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와 가깝게 지내려는 아버지 A와 휴일에도 직장 일에 파묻혀 육아는 뒷전인 아버지 B 간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A : 애들과는 시간이 중요해요.

B :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A : 아버지라는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그렇다. 아버지도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아니었고, 돈을 벌기 위한 직업 이외에 돈을 쓰기 위한 '아버지'라는 또 다른 직업을 얼떨결에 갖게 되었으며,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줬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결국은 다시 본인의 몫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라는 이름표가 버거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그들의 무게감을 자식들은 얼마나 이해하며 살고 있을까.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17년 청소년 종합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의 25.9%는 부모님과 자신의 고민에 대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을뿐더러, 매일 30분 이상 대화 시간을 포함하여 함께하는 시간이 아버지(41.1%)보다는 어머니(72.9%)가 더 많다고 한다.

'슬픈 한국의 아버지'라는 제목의 2015년 빅데이터 분석 기사는 한 술 더 뜬다. '엄마+거실'의 연관어가 '놀다(9%)', '대화하다(4.5%)', '웃다(3.1%)'인 반면 '아빠+거실'의 연관어는 '나가다(17.7%)', '싫다(8.8%)', '무섭다(7.9%)'란다. TV는 물론 내 주변에도 본인이 '딸바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은 많지만, 그 분들의 딸들이 모두 '아빠바보'일지는 의문이다.

나 역시 지난 겨울 종영한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볼 때만 해도, 몇 년 전 '내 딸 서영이'에 빠져 있을 때만 해도 아버지께 다정한 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때 잠깐, 그것도 마음뿐이었다.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잔소리로 대화가 단절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최근 노년층의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지는 한편 스마트홈이 진화하면서 따로 살지만 부모님 집의 출입기록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가 출시되었다고 한다. 기계가 부모님의 안부를 챙겨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보다 더 정교하고 편리한 서비스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애정 어린 눈길과 미소, 악수와 포옹의 인간미를 대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버지 이야기를 아끼고 아껴 가정의 달, 5월에 쓴다. 오늘 퇴근길에는 내가 먼저 아버지께 악수를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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