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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찬란하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봄이 지나고 있네요. 사람의 삶을 싣고 계절은 끊임없이 자신의 갈 길로 묵묵히 걸음을 옮겨 놓습니다. 추운 겨울 날, 봄을 간절히 기다렸던 마음이 엊그제 같건만, 벌써 계절은 봄의 뒷모습을 남기면서 여름을 데려옵니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들쑥날쑥 하며 계절의 변화를 예고합니다. 아침에는 봄날의 상큼함으로 한낮에는 뜨거운 여름의 열기로 인간의 감각을 희롱합니다.

'봄, 화를 부르다.'

한 갤러리를 지나다 마주한 글입니다. 그지없이 정겹고 아름다운 봄이 어떤 화(禍)를 부른다는 것인지 궁금했죠. 적어도 갤러리의 문을 열고 전시된 그림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랬지요. 하지만 전시장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는 꽃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위트 넘치는 말맛으로 머리에 환한 등불이 켜진 듯 했습니다. 봄이 꽃, 즉 화(花)를 부른다는 의미였어요. 그런데'봄, 화를 부르다.'라는 제목에서 왜 먼저 재앙만을 생각했을까요. 굳이'꽃을 부른다.'라고 하지 않고, '화를 부른다.'고 제목 붙인 전시 기획자의 의도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화라는 독음에 '재앙과 꽃'의 의미가 동시에 존재하니, 우주의 질서까지 연결이 되더군요. 낮과 밤을 한 몸에 품고 존재하는 하루의 의미와도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하루들이 모여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행복과 불행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이 되는 것이죠.

얼마 전, 봄처럼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꽤 권위 있는 서예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선배의 소식이었죠.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10년 동안 붓을 꺾었거든요. 아내를 잃기 전, 작품을 매년 발표하며 왕성히 활동하던 인정받는 서예가였죠. 하지만, 언젠가 술자리에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었던 기억이 생생했거든요.

"아무리 노력해도 글씨가 벽에 부딪혀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아. 그동안 남의 글씨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한 것 같아."

그는 작년부터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10년 동안 잡지 않던 붓을 다시 잡으며 "이제 손이 떨려 글씨가 잘 안 되네·"라며 멋쩍게 미소짓던 모습이 선합니다. 그런데 그 떨리는 손끝이 봄 아지랑이처럼 희망으로 보이더군요.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로 다가왔으니까요.

"아내가 늘 옆에서 먹을 갈아주었거든. 아내가 세상을 갑자기 떠난 후, 이상하게 글씨를 쓸 수가 없었지."

붓을 꺾은 이유는 아내의 부재(不在)로 인한 무력함이었죠. 사랑했던 아내의 기억이 머물렀던 서예가 보기도 싫을 정도였다고 고백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아내의 빈자리에 감도는 허무함과 적막감 그런데 그 빈 공간에 그리움의 에너지가 조금씩 채워진 것일까요. 그런 이유로 당시에는 넘지 못할 것 같았던 벽을, 부재 속에 단련되고 채워진 시련의 산물들이 쌓여 하나의 형상으로 뚫고 나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힘들면 한숨 쉬었다 가요.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고 눈물 날 때, 그토록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랑하던 이가 떠나갈 때, 우리 그냥 쉬었다 가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中'

스님의 그 말처럼 쉬었다 가면 다시 힘을 채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의 삶에 행복과 불행의 기준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슬픔을 극복하고 나면, 그 자리에 반드시 어떤 형태든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죠. 힘겹고 지난한 길이지만, 그 길을 견디어 내면 또 다른 길이 환하게 열리는 것이 삶의 균형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中 '

화(禍)가 화(花)를 부른 선배의 삶을 생각하며 시를 읽는 밤, 봄날이 더욱 깊고 그윽하게 무르익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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