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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점심때를 알리는 배꼽시계 소리에 식당으로 향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당 안은 사람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다. 문 밖까지 이어진 행렬 속에 서 있자니, 학창 시절 점심시간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1교시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시락을 비우고 숟가락 하나 들고 친구들의 밥을 뺏어 먹던 개구쟁이 친구의 얼굴. 도시락 뚜껑을 열고 밥 위에 얹혀 있는 달걀 프라이를 자랑하던 친구의 얼굴. 꽁보리밥을 뚜껑으로 살짝 감추며 밥을 먹던 부끄러움이 많던 친구의 얼굴. 회초리를 들고 혼식 도시락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의 근엄한 모습도 아련히 떠오른다. 겨울이면 난로 위에 수북이 쌓아 올려놓았던 도시락에서 흘러나오던 구수한 밥 탄 내음, 친구들과 구워 먹던 쫀드기와 떡가래 굽던 그리운 냄새에 입맛을 다시다 보니, 어느새 길었던 줄은 짧아져 식판을 들고 밥을 푼다. 상큼한 봄나물과 향긋한 달래 된장국이 기다림에 지친 시간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 고향의 봄 향기를 듬뿍 전해준다.

식당 한쪽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자리한 항아리들도 오늘따라 유난히 정겹게 다가온다. 봄 향기에 취한 탓인지, 따스한 봄 햇살은 나를 동심으로 데려간다. 어머니는 늦가을이면 메주콩을 푹 삶으셨다. 삶은 콩은 구수한 맛과 향이 참 좋았다. 삶은 콩을 절구통에 빻아주시면 나와 동생들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앉아서 주물럭거리며 네모반듯하게 모양을 만들었다. 함지박에 놓고 '탁탁'치면 둥글넓적했던 모양이 직육면체로 변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시골집 장독대 풍경. 달콤 짭짜름한 간장과 무를 박아 놓은 구수한 된장, 늙은 오이를 눌러 놓은 매콤한 고추장. 우리 입맛에 맞는 반찬을 뚝딱뚝딱 만들게 해주던 어머니의 보물창고였던 장독대를 그립게 하는 항아리들이다.

요즈음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점심시간이 되어 "오늘은 어디 가서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다 물어보면, 대부분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아무거나."이다. 그럴 때마다 늘 가던 곳으로 발길은 향한다. 그렇게 무리 지어 향하던 발걸음도 혼밥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직장의 전통적인 점심 문화에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하루 중 점심시간, 한 시간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점심 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점심시간에 간단한 요리나 샌드위치 등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든가, 쇼핑을 한다든가,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지고 음식문화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 으레 매운 정도를 되묻는 경우가 많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신세대들이 많다 보니 빚어지는 현상이라는 생각이다. 외식할 때 아이들이 맛있다고 해서 들러보면, 느끼한 버터나 치즈로 요리한 "퓨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음식이 많다. "퓨전"보다는 "전통"이란 말이 앞에 붙은 음식이 더 먹고 싶어진다. "추억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어릴 적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고향의 맛이 "최고"임을 뜻하는 것이겠지!

어머니가 무채를 썰어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벌금자리 나물. 맛있게 보글보글 끓여주신 냉이 된장국에 나물을 넣고 싹싹 비며 먹고 있는 어느 봄날의 점심. 입안 가득히 묻어나는 씀바귀의 쓰디쓴 맛은 구수한 냉이와 달래 향기가 달래주었지. 들마루 옆 마당 한쪽에 걸어 놓은 시루에서는 향긋한 쑥버무리 향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고, 자연 그대로의 신선한 맛을 먹고 즐겼던 시절. 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들마루에 옹기종기 앉아,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먹고 있는 동생들과 나의 모습이 그리운 봄날의 점심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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