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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투명한 유리잔에서 봄이 활짝 웃고 있다. 발그름 물속에 얼비치던 연분홍 꽃길. 해거름 저만치서 문득 벚꽃터널을 보았다. 점점 꽃잎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일제히 웃어대면 지축이 온통 흔들릴 것 같다. 눈을 들면 멀리 해 지개 태양도 따사롭고 나는 한 가닥 너울 쓰고 왕벚나무 꽃 보라 속을 걷는 듯했다. 봄에 취하고 향기에 취했다가 얼결에 두어 가지 꺾었다. 안 되는 줄은 알지만 삐루루 울어쌓는 묏새와 다님길의 벚꽃터널이 마냥 고왔다. 언덕이며 갈림길에서 입도 가리지 않은 채 소리도 없이 웃다니 참 신기했는데 방글방글 꽃망울은 간 데 없이 축 늘어져 있던 모습.

무심코 버리려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담가둔 게 그리 살아났다. 며칠 뒤에는 아주 버리게 될지언정 당분간은 무사할 테니 괜찮다. 갑자기 시드는 바람에 죄나 지은 듯 했던 걱정이 사라지면서 보니 함초롬 귀여운 제비꽃 하나. 가느다란 꽃대와 이파리는 이 봄에 핀 것을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치 작았으나 빛깔에 반해 한참을 바라보던 기억이 선하다. 얼마 후 떨어질 봄을 생각하면서 꺾은 한낱 들꽃인데 자줏빛 도투락을 보는 듯 느낌이 새롭고 그렇게 이어진 봄 스케치.

사월도 스무날, 정강이 찰랑이던 봄 물살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언덕배기 산 벚꽃과 길섶의 왕벚나무가 물속에 똑같이 맞물리던 환상도 잊지 못할 거였다. 하기야 저수지 물목의 풍경은 언제나 마주 보고는 있었지. 하늘 높이 뜬 나르샤 은새가 자맥질이라도 하면 물비늘 위에 두 마리로 겹쳐 보인다. 해비치 푸르내에 구름만 떠가도 나란히 곱고 뒤미처 쌍쌍 어우러지던 벌 나비. 하늬바람에 흔들리던 미루나무도 수많은 이파리를 기슭에 흩어 뿌리는 중이었다. 초가을이면 이슬내리기염으로 물들이던 새내기 단풍도 파스텔 톤 빛깔을 풀어놓곤 했는데.

내 인생의 오솔길도 수많은 꽃길로 이어지곤 했기에. 가령 오늘은 벚꽃이지만 가끔은 봄눈 속에 핀 매화를 보기도 하는데 헷갈릴 정도로 비슷한 꽃잎들. 일기가 분분할 때는 살구 꽃길도 펼쳐진다.

하지만 왜 그런지 벚꽃이 더 친근하다. 오늘처럼 어쩌다 봄내음에 반해 꺾어오면 도중에 시들고 그게 참 속상했지만 물병에 꽂는 대로 다시금 피어난다. 시든 꽃도 가끔은 소망이고 삶의 진실이었나 보다. 혹여 들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분홍 보자기를 펼친 듯 풍경과 산뜻한 제비꽃을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살면서 슬픔이니 어려움도 시든 꽃이었으되 소망의 물병에 담가두는 것이다. 오늘같이 금방 처지고 시들어도 물기를 머금으면서 환히 웃던 것처럼 시든 삶의 가지 역시 병에 꽂는 대로 예쁘게 핀다. 너무 힘들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으나 봄도 절반은 바람이듯, 벚꽃 터널에서의 행복 또한 어려움 속에서의 한 컷 풍경이었기에.

오늘 본 제비꽃도 지금은 산뜻한 너울 쓰고 봄볕에 저리 예쁘지만 엊그제는 또 비바람에 시달렸다. 말은 또 피었다고 해야 많지도 않고 서너 송이에 왕벚나무 그늘이다. 우리 삶의 희비애락이 휘도는, 거기 있으면 신기루 같은 소망이 보이곤 했다. 논이라야 오밀조밀 붙은 하늘바라기에 밭뙈기 역시 손바닥만 해서 풍경까지도 나직해 보이던 그 곳. 소출은 몰라도 심심파적 짓는 텃밭과 텃논이 더 친근하고 야트막한 동산 뒤로 두어 채 집도 정겹다.

분홍 차일 늘어선 왕벚나무 꽃길도 대단한데 제비꽃까지 덤으로 가져왔다. 봄이면 햇살 둬 됫박은 구워낼 것 같은 다스름 양지쪽이었거늘. 우리 삶의 퍼즐도 시나브로 빠져나갈 수 있으나 병에 꽂아 두면 내처 뿌리를 박고 꺾꽂이가 되듯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혜윰도 그렇게 뿌리를 내린다. 제비꽃이, 별달리 예쁘지는 않아도 강렬한 보랏빛 때문에 눈길을 끄는 것처럼 부화되지 못한 소망 역시 지표가 된다면 나름 열심히 살아야겠다. 제비꽃까지 덤으로 피어 있던 왕벚나무 길 추억을 땀땀 새겨두면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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