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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4.26 17:34:12
  • 최종수정2018.04.26 17:34:12

한정규

문학평론가

매년 4월말쯤이면 충남 아산에선 성웅 이순신 축제가, 서울 중구에선 충무공 이순신탄생 기념축제가, 전남 해남과 경남 통영에선 충무공 탄신다래가 열린다.

이외에도 5월에 여수거북선 축제, 6월에 옥포대첩기념제, 8월에 통영 한산대첩제, 9월에서 12월 사이 남해 이충무공 노량해전 승첩제, 10월에 해남과 진도에서 명량대첩제가 열린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4월 28일 서울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나 충남 아산 어머니 고향에서 자랐으며 1576년 32세에 식년 무과에 급제하고 그해 12월 함경도 동구 비보전관을 시작으로 1579년 2월 훈련원 봉사, 10월엔 충청병사 군관, 1580년엔 전라좌수영내의 발포 수군만호로 임명됐다. 수차에 걸쳐 파직과 임명이라는 수난도 적지 않았다.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4월 27일 출전 지시 어명을 받고, 5월 경상도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왜선 42여 척을 격파해 그 공으로 5월 23일 가선대부로 승진됐다. 5월 말에서 6월초 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해전에서 왜선 67여 척을 격파하고, 8월 16일 자헌대부로 승진했다. 7월에도 견내량 및 안골포에서 왜선 79여 척을 격파해, 정천대부로 승차했으며 9월 부산포해전에서 왜선 100여 척을 격파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1593년 2월에서 4월 사이에는 웅포 등지에서 왜적을 일곱 차례 공격했으며 7월 15일에는 본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겼다. 8월 15일 삼도 수군통제사가 됐다.

1594년 3월 제2차 당항포 해전에서도 왜선 31척을 격파했다. 8월 17일 권율 곽재우·김덕령과의 협력 9월과 10월 장문포 영등포의 왜군을 수륙으로 협공했다.

1597년 원균의 모함과 당쟁으로 2월 26일 서울로 압송 3월 4일 옥에 갇혔다. 4월 1일 특사 합천 초계 권율의 막하로 백의종군 명을 받고 6월 8일 입영했다.

7월 16일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궤멸하고 원균이 패사하는 등 전황이 악화되자, 김영원과 이항복이 강력 추천해 7월 2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됐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수많은 해전에서 적군을 격파하는 전적을 세웠다.

10월 수군진영을 벽파진에서 보화도로 옮겼다. 왜적들은 명량해전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아산 소재 공의 마을을 방화했다.

1598년 2월 18일 고금도로 진영을 옮겨 7월 16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과 연합 7월 19일 절이도로 출동해 왜적을 쳐부쉈다. 10월 2일과 3일 왜교 전투에서 패했으며 11월 19일 선조 31년 54세에 노량해전에서 왼쪽 겨드랑이에 적탄을 맞아 운명했다.

성웅 이순신은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현격한 공을 세우신 분이다. 1545년 4월 28일 태어나 1598년 11월 19일 54세로 생을 끝낸 우리민족에게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요즘 권력과 재물에 눈먼 우리 정치인들 4월 28일로 473회째 탄신을 맞은 성웅 이순신 장군의 충성심과 애국정신을 본받기를 감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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