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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순

즐거운교회 담임

"죄 없는 그대들은 가고 / 잔인한 달 4월에 /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이 / 메아리 되어 / 겨레의 가슴에 징을 치는 것을"

'학생혁명 시집'에 실린 김춘수 시인이 쓴 시 '이제야 들었다 그대들 음성을'의 일부다.

참여 인원 10만 명이상, 사망자 수 185명, 부상자 수 1천500여 명. 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일인 오늘로부터 58년 전인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3·15 마산 시위에 참여한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이승만 정부의 강경진압에 맞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교수와 시민들도 동참하게 됐다. 결국 4월 26일 오후 1시에 이승만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서 하야했다.

그 후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후의 의원내각제 정부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로 짧은 정부 그리고 한국 사상 첫 번째 공인 민주 정부체제는 9개월 21일간(1960.7.29.~1961.5.18) 존속하였다. 행정부 수반은 국무총리 장면이었으며, 간선제에 의한 대통령에 윤보선을 두었다.

4월 혁명에 고무되어 빈발하는 학생 운동, 노동 운동 등과 민주당 신파와 구파간의 갈등으로 인한 혼란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4·19 혁명 1주년에 큰 혼란이 올 것을 예상하며 선동을 계획했던 5·16 주체 세력의 예상과는 다르게 대한민국은 평온하였고, 이 때문에 당시의 사회 혼란을 '민주주의를 위한 당연한 진통'으로 파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권야욕에 눈이 먼 정치군인들은 민주주의의 싹이 채 트기도 전에 뿌리 뽑아버렸다. 그리고 경찰정치(이승만)보다 더 무서운 군부 독재정치(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문민정부가 출범하는 1992년까지 무려 32년간 이어졌다.

학생(學生). 그 뜻은 '배우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어리고 여린 학생들, 역사의 고비마다 전면에 등장한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이 어른들을 움직이는 동력원이 되었다. 이는 비단 4월 혁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1910년 강제 합병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진 암울한 시기.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의 기독교청년회관(현 재일본 한국YMCA)에 모여든 재일 조선유학생 400~600여 명 앞에서 최팔용이 일본경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 청년독립단' 발족을 선언하고 이광수가 기초한 2·8 독립선언서를 백관수가 낭독했다. 참여한 사람은 장영규, 최팔용, 윤창석, 김철수, 백관수, 서춘, 김도연, 송계백, 변희용, 강종섭, 이봉수 등이다. 60여 명이 검거된 이후에도 2월 한 달 내내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조선인 학생들의 독립운동이 이어졌다. 이는 이광수에 의하여 국내외에 보도되었으며, 이 사건은 다음 달 3월 1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기독교인이고 선각자이며 독립 운동가였던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어른들의 잘못이 초래한 왜곡된 현실로 인해 젊은 학생들이 절망하거나 불의에 맞서다가 희생당하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 젊은이들이 낙망하지 않고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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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 "재정 자율화 최우선 과제"

[충북일보] 윤현우 충북도체육회장은 "도체육회의 자립을 위해서는 재정자율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윤 회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3년 간 민선 초대 도체육회장을 지내며 느낀 가장 시급한 일로 '재정자율화'를 꼽았다. "지난 2019년 민선 체육회장시대가 열렸음에도 그동안에는 각 사업마다 충북지사나 충북도에 예산 배정을 사정해야하는 상황이 이어져왔다"는 것이 윤 회장은 설명이다. 윤 회장이 '재정자율화'를 주창하는 이유는 충북지역 각 경기선수단의 경기력 하락을 우려해서다. 도체육회가 자체적으로 중장기 사업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보니 단순 행사성 예산만 도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선수단을 새로 창단한다거나 유망선수 육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달 울산에서 열린 103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충북은 종합순위 6위를 목표로 했지만 대구에게 자리를 내주며 7위에 그쳤다. 이같은 배경에는 체육회의 예산차이와 선수풀의 부족 등이 주요했다는 것이 윤 회장의 시각이다. 현재 충북도체육회에 한 해에 지원되는 예산은 110억 원으로, 올해 초 기준 전국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