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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전 충북문인협회회장

옛날 천년 고도라 부르는 우리 고장 청주에서 난데없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쿠테타가 일어났었다. 그것을 보통 '이인좌의 청주 반란'이라 일컫고 역사에는 '무신 난 戊申亂'이라고 적었다. 1728년 영조 4년 3월 15일의 일이었다.

그날, 청주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고 이인좌가 이끄는 반란군은 단 하루만에 관아를 점령했다. 그때, 청주목사 박당은 혼자 도망쳤고 병마절도사 이봉상, 영장 남연년, 비장홍림은 목숨을 잃었다.

그 일로 홋날 박당은 삭탈관직 당했고, 순국한 그 세 사람은 나라로부터 그 충성심을 높이 사서 청주 수동 표충사에 배향되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에 관한 책임을 물어 충청감사 권참은 섬으로 유배되고 충청어사 이도겸은 파면 당했다.

그리고 청주는 서원현으로, 충청도는 공충도로 강등되었다. 무려 9년 동안이었다.

그토록 엄청난 재앙의 폭탄을 터트린 이인좌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세종대왕의 11세손으로 명문대가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공조판서, 조부 형제는 형조판서 전라감사를 지냈고 좌찬성 윤후의 손자사위로 남인에 속했다.

그의 외가가 괴산 송면 이어서 자주 그곳과 청주를 들락거리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런 인연으로 청주가 폭탄을 맞은 셈이었다.

그렇다면 첫째, 왜 그는 반란을 일으켰을까? 그에 대한 뻔한 대답은 당파싸움이었다.

조선왕조의 당파싸움은 선조 때 시작되어 숙종에 이르러서 가장 치열했다.

그 숙종의 두 아들 경종과 영조의 등극을 둘러싸고 불꽃 튀는 싸움 즉 목숨을 무참하게 뺏고 빼앗기는 피 흘리는 전쟁을 벌렸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즉위하자 정권을 잡은 서인과 남인들이 반대파인 노론의 영의정과 좌의정 영중추부사 등 500여명을 싹 쓸어버렸고, 4년 6개월 후 최무수리의 아들 영조가 즉위하자 이번에는 노론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지난날의 보복으로 서인과 남인들을 무차별 제거했다.

그에 맞서 서인과 남인들은 칼을 뽑아들고 전쟁을 선포했다.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 그는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밀풍군 탄을 즉위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들은 영남, 호남, 충청, 평안도에서 일제히 외방기병外方起兵 했으나 사전에 모의가 발각되어 실패했다. 청주서만 손쉽게 관아를 무너뜨리는 기염을 토했다.

둘째, 왜 청주관아는 어처구니없게 넘어박혔을까?

그것은 이인좌가 '트로이 목마 작전'을 썻기 때문이다. B.C 800년경 터키의 항구도시 난공불락의 트로이성을 그리스가 침략했다. 몇 차례 각축전 끝에 그리스군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 자리에 큰 목마木馬가 남겨져, 트로이군은 그 전리품을 성안으로 끌고 들어와 밤새도록 승리의 축배 들고 모두 골아 떨어졌다. 한 밤중 목마 안에 숨겨 놓은 그리스군이 내려와 성문을 열고 횃불을 신호로 그리스군이 밀물처럼 쳐들어와서 순식간에 그 난공불락의 트로이성은 함락되었다.

이인좌도 관군의 비장 양덕부와 관기 월례를 트로이 목마속의 그리스군으로 삼아, 청주장날인 그날이 공교롭게도 박당의 생일이어서 질탕하게 술에 취하도록 월례는 술을 권하고 양덕부는 관아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 이인좌, 신천영, 권소봉 등 200여명의 반란군이 눈 깜짝 할 새 관아를 짓밟았다.

그러나 반란군이 한성으로 진격하다가 죽산에서 관군에게 무참하게 섬멸 당했다. 이인좌는 12일 만에 영조 앞에서 참수 당했다.

그처럼 언제나 무지와 오만 정치적 권모술수는 참다운 정의의 칼에 맞아 쓰러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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