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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

햇살 좋은 3월의 마지막 날 오송 호수공원에 갔다. 호수는 아무도 없는 틈에 구름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잔물결 이는 수면에는 구름의 날개가 어리고 흰 구름 두둥실 노니는 하늘에는 푸른 호수가 일렁인다. 마주 보는 둘은 '너 안에 나 있다.' 하며 마냥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마주 본다는 것은 관심이고 끌림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중 누구라도 싸움을 하면 마주 앉혀놓고 눈싸움을 시키셨다. 웃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움직이지도 말고 서로의 눈만 마주 보게 했다. 나도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내 짝 영식이와 눈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다하지 못한 싸움을 눈으로 계속했다. 그렇게 한참을 쏘아보다가 영식이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동그란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내가 왜 저 애 눈에 있지.' 어이없어하며 눈에 더 힘을 넣었다. 내 짝도 내 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한참을 마주 보던 우리는 겸연쩍게 씩 웃고 말았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제풀에 풀어진 것이다. 특별 처방을 내리셨던 선생님 덕분에 왠지 그 애가 좋아졌던 것 같다.

그때, 영식이 눈 속에 들어있던 동그란 내 모습을 눈부처라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라는 말은 가슴 뛰는 고운 말 눈부처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 나름 짐작해본다.

눈 맞춤은 설렘이다. 설렘이 맞닿은 곳에 만들어진 동그란 실상은 내 모습이니 나이기도 하고 너의 눈동자에 맺혀진 상이니 너라고 해도 되겠다.

내 남편이기 전, 푸르던 청년의 두 눈에 담겼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사랑하는 남자의 눈에 비친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모습이었으니 진주알처럼 맑았을까. 아니면 밤하늘의 별빛처럼 영롱했을까.

두 아들이 아가였을 때, 풀잎 위에 맺힌 이슬방울처럼 해맑은 눈동자에 나타난 내 모습은 천사를 닮지 않았을까.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는데 사진 뭉치 하나가 툭 떨어졌다. 상장을 옆에 끼고 악수하는 사진인데 하나같이 눈은 내리깔고 어깨와 허리는 왜 그렇게 엉거주춤 구부렸는지. 상대의 눈을 마주할 수 없는 자세였다.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자세, 그래서 배려가 부족해지고 제대로 속내를 트고 소통할 수 없는 태도였다. 이 게 내 모습이었다.

'여자는 항상 다소곳해야 한다. 윗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는 건 불경한 일이다'라는 내 어머니의 주문이 이렇듯 당당하게 마주 보지 못하는 나를 만들었나 보다.

세상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글로벌 사회에서 악수의 본질은 손잡음이 아니라 눈 맞춤이다. 자세를 바로 하고 자연스럽게 상대의 눈길을 놓치지 않는 것이 정격 매너라고 한다. 그렇게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상대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호감이 생기고 너와 나의 구분을 넘어 소통의 장도 열리지 않을까.

너와 내가 서로 마주 보며 너의 눈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확인할 정도의 여유로움과 관심이 있다면 그래도 살아볼 만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지인들은 물론, 의례적인 인사말 한마디로 스치고 지나치던 이웃들과도 눈 맞추고 담소를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보고 싶다. 푼수처럼 보일지라도 정을 쌓으며 느긋하게 살고 싶다.

자식들 눈에도 인자한 눈부처로 담겨 보련다. 맑고 총명하던 눈동자는 세월에 도둑맞았지만, 살기 바빠 어미의 감정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무심한 녀석들이지만.

남편의 흐려진 눈동자에서도 내 모습을 찾아내련다. 그때 그 준수하던 청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주 보련다. 때론 외줄의 현이 가슴속 어딘가에서 떨며 퉁겨지더라도 반짝반짝 빛나던 그리움 한 가닥 찾아내리라.

그대 안에 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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