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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혁연

충북대학교 사학과 초빙교수

요즘 제천시가 충주호를 청풍호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서 '청풍'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고 있다. 제천 지역민은 "제천이 충주호 담수면적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충주댐 건설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니 충주호를 청풍호로 개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교통이 불편했기 때문에 강을 하나의 수계로 인식하지 않았다. 따라서 같은 수계이면서도 지역마다 부르는 지명이 달랐다. 청주의 젖줄인 미호천도 무심천과 만나는 부근은 작천(鵲川, 까치내), 석남천과 만나는 곳은 망천(輞川)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충청도와 강원도 사람들도 남한강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강원도 정선지역에서는 연촌강(淵村江), 강원도 영월은 금장강(錦障江), 그리고 제천지역에서는 황강(黃江)이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제천 한수면 일대에는 황강서원과 황강역이 존재하였고, 그리고 권상하(權尙夏)의 조카 권섭(權燮, 1671~1759)은 황강 구곡(九曲)을 설정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제천지역은 "청풍명월의 청풍을 따서 '청풍호'로 하는 것이 충주·제천·단양 등 지역간 합의점을 찾는데 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천지역민들은 과거부터 충청도를 청풍명월이라고 불렀고, 그중에서도 제천지역이 '청풍명월의 본향'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이것은 주장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금의 제천시 청풍면 지역에 청풍도호부 또는 청풍현이라는 행정지명이 존재했던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청풍의 고구려 때 지명은 '사열이'(沙熱伊)였다. 이것이 통일신라 경덕왕이 757년 한화(漢化) 정책을 쓰면서 지금의 '청풍'(淸風)으로 개명되었다.

양주동·도수희·이기문 등 국내 상당수 어문학자들은 이때의 '사열'은 이두식 표현이고, 그뜻은 '서늘하다'로 보았다. 그렇다면 청풍은 '서늘이골' 또는 '사늘이골'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된다. 반면 어문학자 정호환씨는 청풍을 또 다른 이두식 표현인 '살풍'으로 봤고, 그리고 이것은 '살품'이 변한 말로 봤다. 정 박사는 이때의 '살'은 사이, '품'은 틈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그 뜻은 공간과 공간 사이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청풍은 '산중에 존재하는 들판'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다. 실제 지금의 청풍면은 지형적으로 비봉산과 남한강 사이에 형성된 작은 들판에 위치하고 있다.

국내 어문학자의 주장대로라면 '청풍'은 '청풍명월'에서 파생되지 않은 것이 된다. 청풍명월은 중국에서 수입된 표현으로, 최초의 저작권은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 701∼762)이 가지고 있다. 이태백은 그의 시 '양양가'(襄陽歌)에서 청풍명월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백년을 산다 해도 결국 삼만 육천일뿐이니 / 하루 삼백 잔은 마셔야 하겠네 // 죽어 재가 된 사람 금은보화 함께 묻어준들 무슨 소용인가 / 맑은 바람 밝은 달(淸風明月)은 단돈 1전도 안내고 살 수 있고 // 양왕(襄王)과 사랑 나누던 선녀는 지금 어디 있는가 / 양자강 물은 동으로 흐르는데 밤에 우는 원숭이 소리.'

8도 가운데 충청도를 청풍명월의 고장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의 가능성이 높다.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8도 주민들의 기질을 묻자 삼봉은 충청도는 청풍명월, 황해도는 우직하다는 뜻의 '석전경우(石田耕牛)', 함경도는 성격이 강하다는 의미의 '이전투구(泥田鬪狗)' 등으로 표현했다는 구전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충남도도 청풍명월이라는 표현에 대한 연고권이 있고, 실제 충남을 대표하는 쌀 브랜드는 '청풍명월 골드'이다. 이처럼 청풍명월이나 청풍이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복합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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