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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3.22 18:22:00
  • 최종수정2018.03.22 18:22:00

조혁연

충북대 사학과 초빙교수

조철현 감독이 최근 세종대왕과 신미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 '나랏말싸미'의 캐스팅을 배우 송강호·박해일·전미선 등으로 확정하고 곧 촬영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신미(信眉, 1403~1480)는 조선 전기의 스님으로 본명 김수성, 본관은 영산이다. 우리고장 영동이 속세의 고향으로 속리산 복천암에서 주석하였고 오대산 상원사, 월정사 등을 중창했으며 범어(산스크리스트어)에도 능통했던 학승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되기 이전까지 가림토·범자·몽골문자·일본신대문자·문창살 모방설 등 다양한 기원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견됐고,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또 해례본에는 인체 발음기관(자음)과 천지인 원리(모음)에 따라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라는 제자(制字)원리도 설명돼 있다. 따라서 지금은 세종의 한글 친제설이 정설로 굳어 있다. 논란이 계속 되고 있는 상주본 훈민정음 해례본도 내용은 같다.

그럼에도 신미가 세종 한글창제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는 추정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고도의 창의적인 작업을 비전문가이면서 또 국사(國事)에 무척 바빴을 세종이 단독으로 했겠느냐는 합리적인 의문 때문이다. 그 뒤에는 당시 어문에 정통한 누군가가 도움을 줬고, '그 누군가'의 한 명으로 신미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조선시대 성현(成俔, 1439∼1504)과 이수광(1563~1628)이 쓴 '용재총화'와 '지봉유설'에서 훈민정음 범자 모방설이 제기된 바 있고, 또 '복천보장'과 '원각선종석보'라는 고문헌에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 그러나 '복천보장'과 '원각선종석보' 두 책은 하나같이 위작시비에 휘말려 있어 직접 근거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신미가 세종 한글창제 작업을 도왔다고 추정되는 간접 증거는 대략 4가지에 달하고 있다. 먼저 세종도 처음에는 종단을 교·선종 2개만 남길 정도로 불교를 멀리하였다. 그러나 말년에는 불교를 크게 믿어 한양도성 출입이 법으로 금지된 승려를 침실공간까지 불러들인다. 그 주인공이 신미로, '세종실록' 32년 1월 26일자에는 이런 내용이 보인다.

'임금의 병환이 나았는데도 정근(精勤)을 파하지 않고 그대로 크게 불사를 일으켜, 중 신미를 불러 침실 안으로 맞아들여 법사를 베풀게 하였는데, 높은 예절로써 대우하였다.'

두 번째 간접 증거는 시호이다. 세종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신미에게 '선교종 도총섭(禪敎宗都摠攝) 밀전정법(密傳正法) 비지쌍운(悲智雙運) 우국이세(祐國利世)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무려 26자의 긴 시호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특히 그 시호 안에 '나라를 도왔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는 뜻인 '우국이세'가 들어있다는 점이 크게 주목된다. 그런데 세종은 이 시호를 하사하기 직전에 훙하셨다. 따라서 해당 시호는 세종이 아닌 다음 임금 문종이 내리게 된다. 유교로 무장된 대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고, 그러자 문종은 '문종실록' 즉위년 7월 8일자에서 하위지(河緯地, 1412~1456)의 상소에 이렇게 답한다.

'신미에 대한 칭호는 선왕께서 정하신 것이다. 다만 미령(未寧)하심으로 인하여 시행하지 못하였을 뿐이요,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나중에 사육신이 되는 박팽년은 '우국이세'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다. '우국이세란 칭호는 비록 장상과 대신에게 주더라도 오히려 조정과 함께 의논하여 그 가부를 살핀 뒤에 주어야 하는 것인데, 하물며 노간(老奸)이겠습니까?-<문종실록> 즉위년 7월 15일>'

그 결과, 세종이 내렸던 시호는 '선교종(禪敎宗) 도총섭(都總攝) 밀전정법(密傳正法) 승양조도(承揚祖道) 체용일여(體用一如) 비지쌍운(悲智雙運) 도생이물(度生利物) 원융무애(圓融無礙) 혜각종사(惠覺宗師)'로 수정되었다. 논란이 됐던 '우국이세'는 삭제되었고 '혜각존자'는 '혜각종사'로 표현이 격하되었다. 나머지 두 가지의 간접 증거는 신미가 예종에게 올린 한글상소와 수양대군 세조의 복천암 방문이나 지면 관계상 이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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