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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청주시 팀장·수필가

파랗고 잔잔한 물결이 햇살에 물들어 은빛 춤을 추고 있다. 수몰되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학교 운동장을 거닌다. 흘러간 세월을 말해주듯 풍성하게 자라있는 나무들이 나를 감싸주며 위안을 준다. '고향이란 이런 거구나, 포근함을 주는 아늑한 곳'한참을 서서 운동장 바로 앞까지 들어찬 호수를 바라본다. 친구들과 떠들고 재잘거리던 소리가, 좋아라 손뼉 치며 까르르 웃던 웃음소리가, 물안개 피어오르듯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듯하다. 모두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찌 살아가고 있을까· 내게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고향 집은 어떤 모습으로 물속에 잠겨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저 많은 물이 다 빠져 버려, 한 번만이라도 예전 풍경 그대로 되살아날 수는 없을까·'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릴 적 추억이 쌓여있는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한참을 서성이다, 하얀 연기가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솔향기 폴폴 피워내며 밥 짓던, 해질 녘 고향의 고즈넉한 풍경을 떠올리니 발걸음도 사뿐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연기가 오른 곳에 다다르니, 군고구마 통에서 장작이 활활 타고 있었다. 상상했던 시골의 정취와는 달랐지만, 옆에서 펄펄 끓고 있는 올갱이국 향긋함은 아침 일찍 올갱이를 박박 문지르는 소리에 깨어, 눈 뜨곤 했던 기억을 되살려준다.

아버지는 툇마루에 앉아서 된장에 푹 삶은 올갱이를 까시던 모습이. 나는 올갱이 삶는 날이면 교회 옆에 있던 우시장의 탱자나무 울타리로 달려가, 가시를 한 움큼 따가지고 와 올갱이를 돌돌 돌려가며 쏙쏙 빼먹던 일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린 시절 뛰놀던 학교 운동장, 망초대 꽃이 한 아름 피어 있던 둑길. 정월 대보름이면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쥐불놀이 하던 냇가. 그립고 보고 싶은 고향 풍경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기억을 더듬어 볼 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흐르는 세월 탓일까?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마을은 금방 어둠이 찾아들어 정적이 흐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처럼 화려한 불빛도 없다. 산등성이 따라 떠오르는 달빛에, 가을날 풍년을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의 환한 모습이 투영되어 보이는 듯하다. 만국기가 하늘 높이 날리던 가을운동회"영치기 영차!"줄다리기하며 외치던 함성은 어둠이 드리워진 양성산에서 메아리 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문명의 발달이란 명목 아래, 어릴 적 뛰놀던 동심을 고스란히 삼켜버린 대청호. 고향 사람들과의 정이 온전히 묻혀 있는 곳. 물속에 잠긴 고향을 떠나 각자 흩어진 정든 사람들과의 애틋함만 남겨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곳. 디지털 시대의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말하듯이 시멘트와 무쇠 철로 높게 자리 잡은 대청댐을 바라보면, 고향을 잃은 삭막해진 내 마음 인양 슬프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평창올림픽에서 단일팀으로 참가했던 선수들이 헤어짐 속에서 서로 껴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함께 했던 정든 사람과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별을 해야 함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만나고 싶은 고향의 얼굴들과 산천을 떠올렸을 실향민들은 얼마나 애간장이 말랐을까! 지역의 발전과 다수의 행복을 위한 개발이란 당위 속에서 생이별을 하는 수몰민의 아픔. 그래도"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 언제든지 만날 수는 있겠지"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동안 자주 오가던 길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호수가, 오늘은 내 마음의 빈 공간을 가득 채워 허전함을 달래준다. 마음속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며, 동심원을 그려나간다. 내 고향 문산리. 내 어린 시절 추억이 머무는 곳. 오래도록 만인(萬人)의 사랑을 받는 풍치(風致)를 자랑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품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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