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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갑근

변호사(전 대구고검장)

국가는 국민의 납세, 국방 등 기본의무를 바탕으로 국가를 유지하며 국민의 생명, 신체와 자유,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가 지도자들을 포함한 공직자들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보장하도록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가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거나 지도자들이 국가를 잘못 운영하는 경우에는 국민들 모두가 피해를 보지만 특히 보호받을 수 있는 수단을 가장 적게 가지고 있는 서민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되고, 심지어 국가의 존망까지 문제가 된다. 일본 교토에 가면 귀 무덤이 있는데 조선 백성 12만 6천명의 코와 귀가 잘려 무덤에 매장된 곳으로 국가가 잘못 운영되는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상징과 같은 것이다. 일본이 영주세력을 통일하고 조선침략을 위해 서양문물인 조총을 받아들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전함을 건조하는 등 치밀하게 전쟁준비를 하는 동안 조선 조정에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어 소위 붕당정치를 하고, 붕당정치로 인해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서인과 동인대표들이 일본의 조선침략 가능성에 대해 상반된 결과를 임금에게 보고하여 판단을 그르치고, 이율곡 선생이 일본의 침략가능성을 예측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지만 반대파에는 침략가능성이 없다고 부인하여 채택이 되지 않는다.

이런 조정의 분열과 무방비속에 1592년 4월14일 정명가도를 내걸고 왜군이 부산진 공격으로 침략하자 속수무책으로 패퇴하여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고, 20여 일만에 한양이 점령되었다. 국토가 황폐화 되고, 왕궁과 사찰, 문화재가 소실 약탈되는 것을 제쳐놓더라도 왜군은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고, 조선인들을 잡아갔다. 민간인 사상자는 15만명으로 추산되고,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10만명 이상이며, 그중 부녀자 포로만도 2만 여명이고, 이삼평, 심당길 등 도자기 장인들 다수가 포로로 끌려갔다.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농촌이나 공장에서 노예로 일하거나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에 노예로 팔려 끌려갔다. 일본군의 침략초기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전쟁이 의병장의 활약과 이순신 장군의 바다에서 승전으로 점차 전세가 역전되어 왜군들을 격퇴하고 한양을 수복하여 선조는 피난에서 한양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엄청난 핍박 속에서 노예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시적이었던 일본의 도자기 산업은 크게 발전하여 유럽에 수출까지 하게 되고, 조선의 도자기 산업은 크게 위축 되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전쟁중 부하장수들을 독려하기위해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 전리품으로 바치라고 명령하고, 왜군들은 조선군인들의 코를 잘라 보내야했지만 더 많은 전공을 인정받기위해 일반 백성들의 코도 마구 베어 소금에 절여 일본으로 보냈고, 그렇게 희생된 조선 백성들의 코와 귀가 묻혀 있는 곳이 귀 무덤인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주변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붕당정치에 빠져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대가는 참으로 참혹하고 엄청난다. 특히 그 직접적인 피해는 일반 백성들이 고스란히 짊어진 결과가 되었고, 그럼에도 유생, 승려, 농민이 중심이 된 의병장과 의병들의 활약이 전쟁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나 공직자들이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세력이나 집단의 이익을 앞세우거나 진영논리에 빠져 분열과 갈등속에 붕당정치를 한다면 실패한 역사는 되풀이 될 것이다.

해방이후 극심한 좌우대립 속에서 북한에는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고, 일당독재가 되는 동안 아사하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살기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넘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도자들의 역할의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된다. 요즘 주변에서 이민을 가야겠다거나 기업을 해외로 옮겨야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라의 앞날과 정치와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소리도 많이 들린다. 국가와 지도자들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국민이 나라와 정치를 걱정하고 있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역사에서 배워야한다고 한다. 역사에서 지혜를 배우고 반면교사를 삼아 슬프고 실패한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지도자들의 몫일 것이다. 국민이 국가정책을 믿고, 지도자와 정치인들을 신뢰하여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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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