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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丹齋) 가린 직지(直指) '부조화'

청주예술의 전당 앞마당
신채호 선생 동상 인근에 직지 조형물 파빌리온
"고인쇄박물관 등 이전 필요"

  • 웹출고시간2018.02.27 21:00:00
  • 최종수정2018.02.27 21:00:00

단재 신채호 선생의 동상(오른쪽 붉은 원) 앞에 대형 직지 조형물이 세워져 현충시설인 단재 선생 동상이 잘 보이지 않고 있다.

ⓒ 조무주 문화전문기자
[충북일보]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앞에 대형 직지 조형물이 들어서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계 등에 따르면 단재 선생의 동상은 22년전인 1996년 청주시 서원구 청주예술의전당 앞 마당에 세워졌다. 당시 단재 선생 동상건립추진위는 여러 장소를 물색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예술의전당 앞에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건립 당시 추진위는 그의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일본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남쪽 방향으로 세웠다. 그래서 예술의전당 정면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동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시설은 그후 국가보훈처의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16년 동상 바로 앞에 높이 9.1m의 직지 파빌리온이 건립됐다. 직지코리아 페스티벌을 기념하기 위해 디자이너 론 아리드에 의뢰해 면적 120㎡에 30t에 이르는 강판으로 조형물을 건립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신채호 선생 동상은 이 조형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크기도 10분의 1에 불과하여 왜소하기 짝이 없다.

직지가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충북의 자랑이기는 하나 굳이 이처럼 거대한 조형물을 단재 선생 동상 앞에 건립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년 3·1절을 전후해 손병희 선생 유허지나 우암산 3·1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많다. 민족대표 33인 중 무려 6명이 충북 출신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민족 대표 33인만큼이나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쓰다 돌아가신 독립 유공자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선생은 1905년 성균관 박사에 임명되었지만 하루 만에 사직하고 고향인 낭성에서 계몽 운동을 펼치다 황성신문 논설위원으로 위촉돼 언론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최초의 한국 고대사로 평가받는 독사신론을 발표했으며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1936년 2월 만주 여순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선생의 묘소와 영당은 그가 자란 청주시 청원구 낭성면 귀래리에 있다. 순국일인 2월 21일에는 매년 전국에서 많은 추모객이 모여 추모식을 갖는다.
청주의 자랑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위상을 높히기 위해서라도 그의 동상 앞에 자리한 직지 조형물은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 문화·예술계 상당수 인사들은 "대체 장소로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나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검토할 수 있다"며 "99주년 3·1절을 맞아 이제라도 직지 조형물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조무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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