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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이따금 초한지를 읽는다. 특별히 진시황을 도와서 바른 정치를 편'이사'의 업적이 눈길을 끈다. 젊은 시절 보았다는'곳간 쥐와 뒷간 쥐'에서 나온'쥐의 철학'도 특이했다. 이사가 어느 날 뒷간에서 떨고 있는 쥐와 넓은 곳간을 제 집처럼 활보하는 두 마리 쥐를 보았던 것. 며칠 후 이사는 곳간 쥐는 뒷간에, 그리고 뒷간 쥐는 곳간으로 옮겼다. 곳간을 활보하던 쥐가 이번에는 초라한 행색으로 눈치를 살피고 뒷간 쥐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곳간을 들락거리며 곡식을 파먹었다.

그의 삶 또한 곳간 쥐처럼 순조로웠다. 관운이 틔었는지 높은 자리에 올라 승승장구했지만 정치적 파동에 휩쓸리고 쫓기면서 비로소 곳간 쥐 같은 운명을 헤아렸을 것이다. 먹을 건 흔해도 쌀을 축내고 가마니를 뚫어놓기 때문에 덫을 놓고 약을 뿌려 잡는 걸 창고지기였던 그 자신 익히 알고 있었다. 오물을 먹고 사는 뒷간 쥐는 덫을 놓아 잡을 리 없고 마음은 편했을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별안간 닥친 역경에서 어릴 때 본 두 마리 쥐의 운명을 돌아보며 환경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빈부격차를 생각했겠지.

동생은 제법 부유하게 산다. 40代 중반에 벌써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중학생인 남매는 대학교만치나 돈이 들어간다는 사립유치원을 다녔다. 나로서는 이름도 모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3 년 4 년 간격으로 바꾼다. 외국 여행을 이웃집 가듯 하면서 옷부터 가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최고급이었으나 나로서는 시골 쥐와 서울 쥐 얘기가 생각날 뿐 담담하다. 시골 쥐는 푸성귀와 나무뿌리를 먹고 살지만 맛난 걸 앞에 두고도 언제 들킬지 몰라 전전긍긍인 서울 쥐를 안쓰럽게 여긴다. 아무리 풍족한 곳간 쥐라도 가끔은 불편한 게 있다는 것처럼.

동생이 서울 쥐나 곳간 쥐처럼 불안해 보인다는 것은 아니다. 휘하 100명 사원을 거느린 기업체의 사장인데도 드물게 검소하다. 그렇게 경영해도 잘못되려면 별 수 없으나 일단은 차분하고 알뜰한 기질인데 일에 골몰하다 보면 자연히 분주해질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순수하기는 했어도 더 많은 副를 축적하게 되면 꽃 한 송이도 겨르로이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배부른 곳간 쥐는 뒷간 쥐가 안중에도 없을 텐데 마음이 넉넉한 뒷간 쥐는 어쩌다 그렇게 괜한 걱정이다.

한 부모 자식인데도 참 다르다 싶지만 나로서도 사치는 있다. 일례로 노트북과 악기 등은 분수에 맞지 않게 비싼 것을 사면서 고급을 추구한다. 윤택한 정신세계는 돈으로 뒤덮는 풍요로움과는 다르다. 세상을 다 준대도 바꾸고 싶지 않은 비단가난의 배경이다. 부副와는 먼 시골 쥐처럼 살지언정 가난할수록 기와집 짓는다. 부자들의 재산은 상대적인 숫자로 비교하게 되지만 윤택한 정신세계는 무한대다.

곳간 쥐도 뒷간에서는 구차해지고 뒷간 쥐도 곳간에서 잘 먹다 보면 살이 오른다. 누군가 옮겨 줄 때도 그럴진대 스스로 추구할 때는 얼마나 차이가 날는지. 가난하면서도 고상한 시골 쥐와 지저분한 중에도 마음 편한 뒷간 쥐가 사촌쯤 된다면 곤궁한 속에서도 생각은 창공보다 맑고 가벼울 테니 축복이다. 가난할수록 상속받을 유산 즉 꿈과 소망이 있다. 세상에는 가난한 부자 또한 의외로 많다. 뒷간 쥐와 시골 쥐 역시 겉보기에는 구차스러워도 마음은 편했을 테니까.

부귀에 묻혀 지낸 이사도 쫓겨 다닐 때는 뒷간 쥐가 부러웠을 것이다. 다시금 권력을 잡는다 해도 곳간 쥐처럼 서울 쥐처럼 또 불안해질 테니 느낌이 묘하다. 먹을 게 흔한 곳간에서도 그렇다는 것은 넉넉하다고 풍족하지 않고 곤궁하다고 어렵지만은 않은 이중성을 드러낸다. 배고프고 궁한 속에서도 단아한 삶이 될 수 있다니 단소정한의 행복은 그만치 높은 경지였던 것. 그 일상은 비록 단출해도 훨씬 정갈하고 여유롭다. 가난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불행을 뜻하는 말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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