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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2.18 17:16:44
  • 최종수정2018.02.18 17:50:08

지명순

U1대학교 호텔조리와인식품학부 교수

옛날 말에 한 집안의 음식 맛은 장에서 나고 장맛은 물맛에서 난다고 했다. 좋은 물이 장맛의 관건인 셈이다. 좋은 물이라 함은 땅의 기운을 간직한 물이다. 그러니 겨울 동안 꽁꽁 땅의 기운을 응축했던 물이 풀리기 시작하는 우수(雨水) 쯤이 정월장 담기에 적합한 시기이다.

음성군 수정산 아래 곱디고운 아낙네가 장을 담그며 살고 있다기에 찾아갔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길 끝에 "수정산 농원"이라고 쓰여 진 커다란 간판이 보였다. 소문대로 낭궁영자 어머니는 하얀 피부에 얌전한 이목구비가 미인도에 나오는 여인네 모습을 닮았다.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앞마당엔 150개나 되는 독이 줄 맞추어 서있고 주변에는 사과나무, 대추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심겨져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장이 맛있게 익을 것 같은 양지바른 곳이다. 장독대는 공기가 깨끗하고, 햇볕이 잘 들고, 주변에 소나무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 이유는 공기 속에는 여러 잡균과 오염물질이 없어야 장맛을 내는 균이 잘 자라고 햇볕에 독이 달구어지고 밤에는 식어야 발효가 잘된다. 또 소나무의 송홧가루는 살균작용을 해 잡균의 번식을 막아준다.

메주

그녀를 따라 메주 전용 황토방 구경에 나섰다. 칸칸이 메주가 가득, 자세히 보니 흰색 노란색 곰팡이가 꽃처럼 피었다. 지난 가을 수확한 해콩으로 메주 쑤어 겨울 내내 말리고 띄운 것이란다. 이 메주를 솔로 비벼 붙어 있는 곰팡이를 대충 떨고 찬물로 나머지 곰팡이를 씻어냈다. "메주를 씻을 때에는 물에 오래 담구면 안돼요"한다. 이유를 물으니 "메주를 물에 오래 담구면 메주가 물을 먹게 되는데 그것으로 장을 담으면 메주가 풀어져서 간장이 탁해져요"라고 한다. 씻은 메주는 갓 세수한 듯 말끔했다. 다시 햇볕과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딱딱한 돌덩이가 되도록 바싹 말린다.

다음은 소금물 준비다. 크기가 같은 항아리 두 개 준비하고 한쪽 독에 대바구니를 얻고 시야(촘촘한 천)를 깔고 그 위에 3년 묵힌 천일염을 붓고 다른 한쪽에는 천연 암반수를 가득 채웠다. 그런 다음 물 한 박아가지씩 떠서 소금 위에 붓자 항아리 아래로 희뿌연 소금물이 떨어졌다. 이렇게 하면 소금물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된다. 소금물이 만들어지면 계란을 띄워 염도를 확인한다. 계란이 소금물 위로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게 떠오르면 적당한데 염도계로 측정해보니 18보오메이다. 장 담기가 늦어질수록 염도는 점점 더 진해야 하는데 삼월장은 21보오메까지 염도를 높여야 한다.

소금물 만들었다고 바로 장을 담을 순 없다. 하루를 그대로 두어 맑게 되면 사용해야 한다. 소금은 꼭 천일염을 써야하는데 짠맛을 내는 나트륨 외에 무기물질을 많아 짭짤하면서도 달달하기 때문에 장맛을 좋게 한다.

장독

반짝반짝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항아리는 예쁘지만 유약 바른 것이니 장항아리로 사용하면 안 된다. 표면이 거친 듯 투박해야 한다. 항아리 안과 밖이 서로 통하게 숨을 쉬게 해주어야 항아리 속 미생물도 살아서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다. 이집 항아리는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께 물려받아 몇 백 년 된 것부터 최근에 구입한 것까지 제각각 사연도 많다. 오늘은 시아버지께서 이십 리를 지게로 져서 장만했다는 항아리에 장을 담기로 했다.

"항아리는 깨끗이 씻는다고 세제로 씻으면 절대 안돼요" 숨 쉬는 항아리라 세제가 스미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항아리 세척 시에 세제 사용 불가, 화학 소독제 사용 불가이다. 오로지 자연에 있는 물과 연기로 씻고 소독하여야 한다.

씻어 말린 메주, 맑은 소금물, 소독한 항아리까지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 먼저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쌓고 소금물을 항아리 주둥이까지 채운다. 그리고 대추, 고추, 벌겋게 달군 숯을 띄우면 끝이다. 이제 40일을 기다려 장가르기를 하면 되는데 메주는 건져 된장을 만들고 소금물은 모아 간장를 만든다. 그러고 나면 바람과 햇볕에 맡긴다. 보통은 6개월 후부터 먹으면 되는데 여기 수정산 농원은 2년을 꼬박 숙성시킨다고 한다. 그러야 장맛이 깊고 칼칼하단다.

맥적

노랗게 익은 된장에 양파즙, 매실청, 다진 마늘, 다진 파, 깨소금, 참기름을 섞은 다음 삼겹살에 발라 한참을 주물렀다. 고기 결 사이에 양념이 배었을 쯤 숯불 위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구수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릴까봐 속으로 삼킨다. "우아~이게 된장으로 양념한 맥적이에요· 돼지고기 누린내가 전혀 안 나고 부드러워요!" 평소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았던 나지만 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 생된장에 찍어 먹는 배추쌈도 고기 맛을 살린다.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만약, 정말 만약에,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장 담아야죠!"라고 대답했다. 대대손손이 대물림하면 먹을 수 있는 장이야 말로 후손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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