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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방에 덩그러니… 홀몸노인의 애달픈 세밑

청주 내덕2동 81세 지체장애인 홍기용씨
기초연금·공공근로로 생활
연락두절된 가족 탓에 복지서비스마저 제외
"공공근로 계속하게 도와달라" 하나뿐인 생계수단 간청

  • 웹출고시간2018.02.08 21:00:00
  • 최종수정2018.02.08 21:00:00

청주시 청원구 내덕2동 홀몸노인 홍기용씨에겐 사례관리사 김은영씨가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8일 홍씨가 집을 방문한 김씨 쪽으로 전기히터를 슬그머니 돌려놓고는 최근 일한 공공근로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최범규기자
[충북일보] 8일 제법 날씨가 풀렸지만 그래도 바람은 찼다.

이날 오전 찬바람을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한 노인.

청주시 청원구 내덕2동에 살고 있는 홍기용(81)씨다.

그의 눈은 골목 끝자락만 내내 응시하고 있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지만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오랫동안 앓고 있는 협심증 탓이다.

이내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 홍씨는 엷은 미소로 그를 맞았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가족을 본 냥 기뻐했다.

홍씨가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은 내덕2동 사례관리사 김은영씨였다.

김씨는 "추운데 왜 나와 있냐"고 홍씨를 나무랐다.

홍씨는 김씨의 이런 투정에도 그저 웃기만 했다.

영락없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부축해 방안으로 들어갔다.

홍씨는 김씨를 '실장님'이라고 불렀다.

홍씨가 아는 가장 높은 호칭이 '실장'이었다.

이들이 들어선 방안은 냉골이었다.

바닥 난방이 되지 않았다.

홍씨는 1인용 전기장판과 이불, 그리고 집주인이 사다준 전기히터에 의지해 겨울을 나고 있었다.

불을 켤 수 있는 소켓이 2개가 있는 전기히터였지만 홍씨는 매번 1개만 키고 지낸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집 주인이 전기요금을 내주겠다고 하는데도 홍씨는 "여간 미안해서…"라며 나머지 한 개의 불을 켜지 못했다.

홍씨에겐 사실 가족이 있다.

아내와는 오랜 별거 끝에 지난 2003년 이혼했지만, 3남 3녀의 피붙이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홍씨는 가족들과 30년 넘게 떨어져 살았다.

전북 고창의 한 도정공장에서 일하다 1990년 청주로 홀로 떠나왔다.

강외(현 오송)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지인의 요청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왔고, 그때부터 일용직 노동을 하며 홀로 생활했다.

고된 노동에 몸은 망가졌다. 치아는 모두 빠졌다.

병원비가 없어 치료시기를 번번이 놓쳤다.

결국 2015년 병원 신세를 졌고, 이후에도 느닷없이 숨이 가쁘고 힘이 없어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그 때마다 힘겹게 119를 불러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다.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씨가 받는 복지 서비스는 고작 차상위본인부담의료경감 정도다.

홍씨의 큰 아들은 2015~2016년까진 큰 돈은 아니지만 용돈을 보내줬다.

하지만 이마저 2016년 말부터 끊겼고 홍씨는 더 많은, 더 오래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지체장애(하지 관절)로 거동이 불편한 탓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공근로가 전부였다.

기초연금 20여만 원과 장애 수당 4만 원으로는 약값은커녕 생활비조차 충당할 수 없었다.

그가 스스로 버는 돈은 공공근로 보수 46만 원이 다다.

이런 홍씨는 동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사례관리사를 만날 때마다 거듭 간청한다.

"나 아직 일할 수 있어. 공공근로 계속하게 해줘. 다른 사람들도 해야하는 거 아는데, 좀 도와줘."

홍씨는 오는 3월까지 하는 공공근로가 올해 마지막 일자리가 될까봐 걱정했다.

그러면서 혈육과의 인연이 단절되기를 기다렸다.

가족과의 단절이 복지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작년 5월부턴가· 그 때부터 (아들과) 연락이 안 되고 있으니까 앞으로 2~3달만 더 있으면 1년째야. 그러면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봐."

홍씨는 가족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단다.

"실장님(김은영 사례관리사)이 안부전화 해줄 때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 내가 가진 게 뭐가 있어. 이 양반들 때문에라도 못 떠나. 그러니까 실장님도 다른데 가지마."

홍씨는 비록 혼자이지만 명절 때마다 차례는 꼭 지낸다고 했다.

방 한 켠에 고추장 종지가 놓인 작은 상.

올해 설날에는 공공근로로 번 돈으로 과일이라도 올릴 생각이다.

/ 최범규 기자 calguk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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