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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냇가에 청둥오리가 잔뜩 몰려들었다. 사나흘 무지하게 추운 뒤 개울이 온통 얼어붙은 게 며칠 전이다. 그리다가 날씨가 풀려 가장자리 얼음 깨진 곳을 헤집고는 한꺼번에 자맥질이다. 따스한 날은 얼씬도 하지 않다가 춥기만 하면 때로 몰려드는 녀석들. 하도 추워서 두툼한 외투에 장갑까지 끼고도 옹송거리지만 그것을 보면 무심결에 어깨가 펴지곤 했다.

그러고 보니 어언 2월이 가깝다. 겨울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더니 절반은 지났다. 당분간은 더 추워질 것이나 얼마 후 봄이 되면 꽃을 달고 잎 틔우는 소망을 생각했다. 냇물 소리는 멈춘 지 오래고 나무 역시 더는 휘파람을 불지 않아도 봄은 꽁꽁 언 그 속에 들었다. 나무조차 손을 맞잡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지금 날씨가 따뜻하면 진정한 봄이 되지 않는다는 뜻. 우리는 또 그런 속에서 추워야만 봄을 기약할 수 있다고 해 왔으니까.

앙상한 겨울나무가 꽃눈을 매단 채 떨고 있는 모습이나 땅 속에 묻힌 씨앗이 겨울을 기다리는 것도 잊지 못할 풍경이다. 가장 따스한 봄은 가장 추운 속에서 만들어진다. 잿빛 하늘은 보기만 해도 썰렁했으나, 추운 만치 온기가 돌기도 한다. 아랫목이 그리워지고 잘 익은 군고구마 생각이 나는 것도 바짝 추워진 뒤다. 마음이라도 덥혀져야 날씨가 누그러진다고 하듯.

집에 돌아 온 것은 해거름이었다. 해도 약간 길어졌는지 넘어가는 태양도 여유롭다. 무심코 창가를 보니 선인장이 예의 꽃망울을 달았다. 따스할 때는 잠자코 있다가 추워지면 꽃을 피우곤 했지. 추워져야 긴장을 하고 꽃을 피운다는 한 떨기 꽃이 이 겨울 무척이나 예쁘다. 꽃도 꽃이지만 바람 부는 창가에 내놓으라고, 그래야 더 곱게 핀다고 했던 말이 가슴에 남는다.

잠깐 피고 질 꽃조차도 찬바람을 맞으며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무엇이든 쉽게 이루는 데만 집착한다. 살다 보면 겨울의 혹한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지만 눈 속에서도 봄꿈은 피고 땅 속에서 초록을 틔우는 씨앗들. 무성한 초록과 단풍을 내려놓는 나무처럼 휴먼 기간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럴 때 자세로 일의 성패가 좌우된다. 지금은 또 한겨울 꿈이 꽃눈으로 피는 간이역 같은 곳. 봄이 겨울 다음이라는 것은 추위를 견디는 과정이 꽃을 피우는 데 일조했다는 의미였거늘.

추위를 견디는 건 수월하지 않으나 선인장도 바람 부는 창가에서 피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벌레가 새끼를 치고 질병이 많아지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고 한다. 정작 추울 때는 그 생각이 까맣게 멀어지곤 했으나 추울 때마다 한번씩 다지는 섭리는 그만치 소중했다. 추워지기만 하면 개울을 까맣게 뒤덮는 청둥오리 녀석들. 추워질 때마다 봉오리를 여는 선인장 꽃 두어 송이와 함께 그것은 추워야만 되는 겨울의 속내를 드러내곤 했는데……

내 인생 페이지를 새삼 들춰 본 것이다. 살면서 추가하고 싶었던 것은 온화하고 따습고 부드러운 뭐 그런 거였다. 춥고 어설픈 것은 과감히 물리쳐 왔으나 내 추구하는 그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은 귀 끝이 아리도록 차가운 속에 깃드는 걸 몰랐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중에도 난롯가의 풍경은 훨씬 정겹게 다가온다. 모진 겨울일수록 그 다음 찾아오는 봄은 화려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밤이 되자 어둠과 함께 몰아치는 칼바람. 일기예보에는 밤부터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했으나 봄은 그렇게 바람이 똬리를 트는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겨울 목록에 끼워진 채 페이지가 넘어가길 기다리는 봄같이 나도 그렇게 훗날을 기다린다. 귀 기울이면 꽃 보라 속을 달리는 발자국 소리. 마음은 이래도 추위는 한참 남았는데 벌써부터 봄의 거취에 신경이 쓰인다. 어느 시인의 탄식처럼 겨울이면 봄은 멀지 않은 것일까. 마음까지 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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