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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숙

수필가

대규모 문화 행사 때문인지 숙소 배정에 다소 혼란이 생겼다. 달갑지 않게도 여자 숙소는 다른 지역 회원들과 백여 명이 함께 자야 하는 요사채 큰방으로 정해졌다. 학교 운동장만 한 절 방에 짐을 풀어 놓으니 피난민 수용소나 다를 게 없다.

어디를 가나 우리는 아직도 조급증 근성이 남아 있는 걸까. 휩쓸리듯 몰려 들어간 방에 잠시 서성대니 한 귀퉁이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담요와 베개가 순식간에 동이 났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 재빠르게 자리를 깔고 확실하게 자기 영역에 금을 긋는 씁쓸한 풍경은 그 어떤 자존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함께 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 따위는 강 건너 불이었다. 나 또한 덩달아 분주하게 담요 두 장과 잠자리 공간을 먼저 차지했으면서도 행여 빼앗길까 봐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한발 늦은 이유로 사이사이 빈 곳에 끼어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두 다리를 온전히 뻗을 수 있었지만, 잠을 설쳐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스님이 뱀 조심할 것을 두어 번 단단히 일렀는데도 밤 깊도록 출입문은 삐그덕 댔다. 천정이 들썩대도록 코를 골던 사람은 오히려 소란스러워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핀잔에 실소하며 개운치 않은 아침을 맞이했다.

뿌연 새벽 이른 공양을 위해 일어나 문밖을 나서려다 눈이 번쩍 뜨였다. 처마 밑에 난장판으로 엉켜있던 백여 켤레의 신발이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중생들의 아수라장인 작태를 가엾이 여긴 어느 스님의 손길이려니 짐작했다.

그러나 하룻밤을 함께 지낸 낯선 노인 한 분이 노느니 신발이나 정리한다며 그 많은 신발을 일일이 짝을 찾아 맞추어 놓았다는 목격자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말이 백여 켤레이지, 한여름 땀 냄새로 절은 남의 신발을 만지기가 절대 수월치 않았을 것이다. 악취와 고역을 견디며 분주했을 그 손길은 마침 법당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경을 훔쳐 듣는 것처럼 세속의 때를 부끄럽게 했다. 이리저리 뒤엉켜질 신발이 불안해 방안 옷장 한구석에 밤새 모셔놓았다가 들고 나온 내 손이 화끈거렸다.

어쩌면 사람의 진정한 모습은 만 가지 표정을 짓는 얼굴보다 돌아서 갈 때의 뒷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읽게 되는지도 모른다.

욕실과 화장실 가는 통로에는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나온 사람들의 물기로 흥건했다. 팽개쳐 놓은 세숫대야와 바닥에 널린 일회용 샴푸 비닐 포장지가 흩어져 있는 머리카락만큼이나 어수선했다. 제대로 잠그지 않는 수도꼭지에서 졸졸 새고 있는 물이 숨길 수 없는 여전한 우리의 모습이었다.

지난밤에 부린 욕심의 빚을 갚기라도 하듯, 담요 두 장의 끝자락을 몇 번이고 반듯하게 맞추어 개었다. 구석에 끼워 두었던 껌 종이도 슬그머니 끄집어내었다.

이따금,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진흙밭 같던 신발들이 백여 송이의 연꽃처럼 피어나 아른댄다. 백 켤레의 신발을 매만졌던 생불의 손길이 오래도록 내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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