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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당국 화재참사 유족들에게 "죄송하다"

유족들 현장대응 부실 및 구조적 문제 지적

  • 웹출고시간2018.01.07 14:20:33
  • 최종수정2018.01.07 14:20:33

제천소방서와 합동조사단이 마련한 화재 참사 유가족들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 자리에서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이 유족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이형수기자
[충북일보=제천] 상민 제천소방서장이 유족들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글사진=이형수

제천 화재참사와 관련해 소방당국이 "참사를 제대로 막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지난 6일 오후 3시 제천소방서와 합동조사단은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 유가족 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유가족들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급박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에 화재 당시 인력을 최대로 가동했으나 한정된 장비와 인원으로 사투를 벌였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다시 한 번 유족과 제천시민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어 이 서장은 "화재 원인이나 대응과 관련 앞으로 전개되는 조사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유족들은 소방당국이 화재 당시 초동 대처와 첫 출동 지령 시간에 의문을 제기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무전기 교신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묻는 유족 질문에 소방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는 무전 교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당시 현장에 인력이 없어 지휘 차량에서 제대로 교신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유족들은 20명이 숨진 2층 목욕장에 서둘러 진입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다.

유족들은 "당시 2층 비상구에는 농염만 있었을 뿐 큰 불은 없었다"며 "그 정도 연기라면 방독면을 쓰고 충분히 진입할 수 있었다"며 오후 4시10분에 촬영된 2층 비상구 사진을 제시했다.

이어 "당시 현장에 있던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2층에 사람이 많이 있다고 소리치며 진입을 요구했는데도 진입을 못한 이유가 무었이었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소방서 관계자는 "대원들과 진입을 시도했지만 불로 인한 열기가 너무 강해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했다"며 "그 후 지하층으로 곧바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유족은 "그 판단 때문에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은 것"이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유족들은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헬기가 오히려 불길을 키웠다는 주장도 했으며 현장 대응 인력 부족 등 소방의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현장 지휘가 적절했는지를 묻는 유족들의 질문에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제가 가진 소방 지식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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