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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1.23 20:10:44
  • 최종수정2017.11.23 20:10:44
[충북일보=청주] 청주 상당구 대성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향교 청주향교에 다녀왔다. 청주향교는 전국의 향교 가운데 가장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기에 그 만큼 경치도 뛰어나다. 충청북도 도청에서 충북 문화관을 지나 그 위로 향하면 청주향교의 모습이 나타난다.

청주 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며 1977년 충북유형문화제 제 39호로 지정됐다. 청주에는 총 11곳에서 문화관광 해설 안내소를 볼 수 있는데 청주 향교도 그 중 한 곳이다. 문화관광해설사는 관광객들에게 가벼운 이야기 위주의 해설부터 역사, 문화, 생활상까지 자세한 전문 해설을 해준다.
세종대왕 100리길로 조성된 이야기 속에도 청주향교가 등장한다. 청주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각 지방에 360개의 향교를 세우고 인재양성에 힘쓸 때 삼남 제일의 향교로 들어섰다.

세종대왕이 1444년에 안질치료 등을 위해 인근의 초정에 행차했을 때 청주향교에 책을 9권 하사했고, 20년 후에는 세조가 이곳에서 여러 날 머무르며 문묘에 친히 제향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주향교 앞 홍살문

청주 향교 앞에는 홍살문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향교는 현재의 면, 과거 현 단위 이상 건립됐고, 홍살문은 향교, 서원, 능, 묘 등의 입구에 세워 경계를 표시했다. 홍살문 왼편에는 하마 표지석이 있는데 지위를 가진 양반이나 일반 백성 누구나 동등하게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다. 그 만큼 청주향교의 위엄을 볼 수 있다.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향하는 계단

홍살문을 지나 외삼문으로 향하는 계단은 세 분류로 나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삼문은 명륜당을 출입하는 문으로 가운데 계단은 신도라고 해서 성현의 혼령이 출입할 수 있고 과거에는 오직 왕만 중앙계단으로 걸었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은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서쪽 계단으로 내려올 수 있는데 동, 서를 나누기가 힘들다면 항상 오른쪽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올라갈 때는 오른편으로, 내려갈 때는 왼편으로 걸어 내려오면 된다.

외삼문을 통과하면 조선시대의 관학기관인 명륜당을 볼 수 있다. 향교는 주로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륜당과 대성전이다.

향교는 늘 대성전이 우선이라 평지에 향교가 지어진 곳은 대성전을 앞에서 볼 수 있는데 청주 향교는 산비탈에 지어져 대성전을 위에서 볼 수 있다. 명륜당 앞에는 동제, 서제라 불리는 건물이 있는데 청주는 지을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과거 명륜당 양쪽에 방을 만들어 동제, 서제 구실을 했다고 한다.

명륜당

명륜당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일체의 학비나 식비의 부담이 없었고, 서민들은 16세부터 군역, 요역의 의무가 있었다. 향교에 들어오면 40세까지 면제가 됐다고 한다.

교관으로 세종 때 유학교수 1명을 두었다가 성종 때 종6품의 교수 1인을 두고, 경국대전에 따르면 교생의 수를 90명으로 정했다고 한다. 과거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실을 현재는 상설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명륜당은 눈썹지붕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색 있다.

청주향교에는 사람의 나이보다 훨씬 오래 살았을 법한 수 백 년 된 나무들이 많이 있다. 단풍이 드는 모습과 함께 풍경이 어우러져 향교의 고즈넉함 속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명륜당 옆에 위치한 증반실은 제향의식 준비로 향불을 피우거나 차를 다리는 곳이라고 한다.

청주 향교가 있던 장소는 고려시대 사찰이 있던 장소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탑의 윗돌, 지붕돌이 거꾸로 되어 있는데 이 돌을 통해 옛날에 절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명륜당 위편에 위치한 대성전이 있다. 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공자를 뜻하며 청주향교에서는 성균관과 같이 29분을 모신다고 한다.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들며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고 지방의 민풍과 예속을 순화하는 곳이다. 즉, 제향과 교육의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이었다.

대성전

명륜당 앞에서는 동무와 서무를 볼 수 있는데 이 동서 행랑채는 본래 송나라6현과 우리나라18현의 위패를 나누어 각 12현씩 모셔왔다. 하지만 1949년에 행랑채에 모시었던 위패 전부를 대성전에 올려 모시게 돼 현재는 비어있다.

대성전의 문은 닫혀 있다 매월 음력 1일과 보름에 간단히 차를 올리고, 매해 석전이라고 하는 제향을 지내는 때만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석전은 무형문화재 제85호로 춘기와 추기 석전이 있다.

공자를 정중앙에, 양쪽으로 14분씩 모시고 있다.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대 사상가로 교육자로 유교의 창시자이자 성인으로 일컬어진다.

우리나라의 18현 문홍공 정여창, 문충공 정몽주, 문창후 최치원

공자 다음으로 사성을 모시는데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다. 중국에서는 아주 공경하는 사람의 뒤 이름에 '자' 자를 붙인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주희 선생님을 주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다.

사성 뒤에는 송조6현과 우리나라 18현을 모신다. 우리나라의 18현 가운데는 문홍공 정여창, 문충공 정몽주, 문창후 최치원 등 유명하신 분들이 있다.

대성전은 우암산의 나무들이 바로 보일만큼 전망이 좋고, 어느 향교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현재는 젊은 세대들에게 문묘를 모시고 있는 성현들의 큰 덕과 선비 정신의 참뜻을 알려주고, 성균의 교육이념에 따라 윤리와 도덕을 일깨워 준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미래의 대동 사회를 선도할 청주향교에서는 향교스테이, 충청유교역사문화탐방, 전통문화 체험 등 다양한 체험들을 즐겨볼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많은 이들이 청주향교를 방문했으면 좋겠다.

/청주시 SNS서포터즈 최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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