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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학

충북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바알갛게 한껏 빛이 오른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담을 넘어 우리 주차장까지 늘어졌다. 앙상한 가지에 감만 덩그러니 매달린 모습은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고향 마을 어귀의 감나무를 연상케도 한다. 그 감은 푸근하고 정이 넘치는 고향 인심을 떠올리게 해 절로 미소를 짓게도 한다. 누군가가 담을 넘어 왔으니 우리 거라며 따먹자고 농담 삼아 하는 얘기에 주억거리며 호응하기도 하고, 오성과 한음에 얽힌 이야기를 들먹이며 따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날 보니 감이 모두 사라졌다. 언제 어떻게 땄는지 담을 넘어온 감까지 한 톨도 남김이 없다. 잎은 아직 무성하게 남아있었지만 감이 사라진 나무는 퀭하기 그지없다. 바람이 일 때마다 잎이 부딪히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사람이 어쩌면 까치밥도 안 남겼냐며 감나무 주인이 매정하다는 듯 탄식한다.

까치밥은 인정과 사랑이다. 꼭 까치가 먹어야 해서 까치밥이라고 한건 아니다. 까마귀도 좋고, 비둘기가 먹는다고 안 될 것도 없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남겨 둔 감 하나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아마도 까치가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면서도 길조라 여겨 그 이름을 붙인 듯싶다.

우리 조상들은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었을 텐데도 까치밥 뿐 아니라 추수를 할 때도 일부러 낙곡이나 뒷목을 남겨 동물들이 먹도록 배려했다. 우리의 전통으로 연면히 내려온 인정의 발로인 것이다. 먹이라고 하지 않고 밥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정과 배려의 산물일 것이다.

공존과 공생이란 묘리의 실천이기도 하다. 까치밥을 남겨두는 것이나, 우리 조상들이 콩을 심을 때 한 구덩이에 세알을 심은 이유가 하나는 땅속의 벌레 몫이고, 또 하나는 하늘을 나는 새, 나머지 하나만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겨서라니 이보다 더한 공생의 실천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듯 남김은 우리 전통의 미학이다. 만연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생태 파괴, 무한경쟁으로 인한 비인간화를 치유할 수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도 남김의 소중함을 '유재(留齋)'란 현판에 남겼다. '재주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라는 글과 함께.

요즘은 어떤가 날로 각박해져 숨 쉴 틈조차 없을 지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 탐욕을 채우려 한다. 남김은 어리석은 자들의 교만으로, 인정과 사랑을 말하면 약자들의 변명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공존과 공생의 길은 멀기만 하고 까치밥과 '유재(留齋)'의 깊은 뜻이 더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곧 겨울이다. 겨울이 되면 춥고 배고픈 이웃들을 위한 온정이 쏟아진다. 재물을 다하지 않고 베푸니 남김의 미학이 아닐 수 없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을까?

그 감나무의 가지는 어린이 집에서 넘어왔다. 어린이 집에 다닐 나이면 보고 듣는 것들을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할 시기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까치밥 몇 개 남겨 놓은 후 그 이유를 알려주었으면 어땠을까? 법까지 만들어가며 가뜩이나 메마른 인성을 살리려는 마당인데 산교육의 장으로는 그만이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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