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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꽃병 속의 덩굴장미가 환하게 웃는다. 입을 꼭 다문 채 봉오리 진 꽃이 제철이나 되듯 곱다. 지난 토요일 개울을 지나다가 하도 고와서 얼결에 꺾어 왔다. 몹시도 바람 불어 춥던 그 날 된내기까지 내려 푸르등등한 이파리 속에서, 나 여기 있다고나 하듯 상기된 채 피어 있던 새초롬 덩굴장미 꽃.

된내기를 무릅쓰고 간신히 핀 것을 생각하면 안쓰러웠으나 바람이 불면 또 한차례 떨어질 테고 그럴 바에는 꽃병에 꽂아두고 완상하는 것도 괜찮으리라 싶었다. 꽃이 귀한 초겨울 무심코 보노라니 어설픈 중에도 제법 아리따운데 제 철보다 거의 반 년은 지나 초겨울에 피는 곡절이 뭘까, 그 때보다는 못하지만 텅 빈 들판이라, 고명이나 끼얹듯 더러 꽃이 피기도 한다는 게 붉은 이파리만치나 곱다.

들판을 끼고 돌던 그 때 마음이 그랬다. 자세히 보니 덩굴장미 뿐 아니라 노란 민들레까지다. 꽃이라야 기껏 단추만한데, 제 철 같으면 잘 띄지도 않을 것이나 그만해도 썰렁한 들판이 아늑해 온다. 크고 작고 소담한 것을 떠나 이듬으로 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메시지를 받아 적는데 길섶의 쑥과 냉이가 문득 탐스럽다.

좋은 시절 다 간 뒤 하필 초겨울 어름에 피고 돋는, 그렇게라도 한 번 싹을 틔운 뒤 겨울잠에 드는 속내는 뭔지. 봄에 피지 못한 아쉬움으로 햇살조차 시들고 가늘어지는 초겨울, 바람까지 쌀랑대는 속에서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는 것 같지만 눈이라도 쌓이면 땅속으로 움츠러들 뿐이다. 그냥 참았다가 봄에 싹 틔우면 간단한 것을, 겨울잠에 들기 전 잠시 볕을 쬘 수는 있어도 해는 노루꼬리처럼 짤막하고 구름 낀 볕뉘는 온기조차 없다.

떨어지는 가랑잎조차 줄기와 이파리 틈으로 얇은 막을 만들어 물기를 차단하면서 단풍이 들었거늘 길 한켠의, 물기는 진즉에 말라 간간이 누렇게 뜬 꽃잎이야말로 무슨 안간힘으로 저리 피었는지. 어디 물기를 감추었다가 꺼내 쓴 것도 아닐 것 같고, 물기가 적을수록 꽃은 더욱 선명해지는데 물기 촉촉 머금은 잎은 도대체 무슨 연유인지. 단풍이야 물기가 마르면서 새들새들 고와진 것인데 가을 찬 이슬까지 촉촉 적셔주니 그래서 더 예쁜지 모르겠다.

속내는 물기 하나 없어 말랐어도 영롱한 이슬이 눈물처럼 맺혀 있다. 물 마른 단풍이 찬 서리에 고와진다는 표현이 나옴직하다. 그래서 늦가을에도 더러 꽃이 핀다는 느낌. 어느 해 보면 담장의 개나리가 다박다박 피었다. 길섶의 냉이가 까칠한 잎줄기 새로 쌀톨보다 작은 꽃대를 내밀기도 한다. 꽃이든 초록이든 전성기라 해도 오래지는 않았을 테니 뒤늦게 찬서리 맞아 피는 모습이 대견하다. 봄에 만발했어도 아쉬움은 당연히 있을 것이기에…

그나마도 며칠이면 죄다 떨어질 꽃병의 장미가 안 되기는 했다. 금방 추워질 걱정으로 꺾어는 왔어도 바람모지 들판에서 더 행복했을지 몰랐겠다는 아쉬움. 덩굴장미 발치에 묻혀 있던 수많은 가랑잎을 보면 초겨울은 어차피 그런 이미지였으나 한때 가랑비에 날리며 늦가을 이미지를 전하던 그 모습. 잎 하나 집어 드는 순간 가을엽서 귀퉁이 붙어 있던 낡은 우표가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계절이 가고 있다고 모퉁이 모퉁이 낙엽으로 지면서 퍼뜨리던 홀씨 아닌 홀씨를 보는 듯했었지. 그런 중에도 아쉽지 않은 것은 또 늦가을 메시지를 전하듯 겨울을 난 뒤에는 봄소식까지 전해줄 것 때문이다. 수없이 날리던 가랑잎 연가는 낙엽이 질 무렵 잎자루와 가지 끝에 생기는 떨켜에서 비롯되었거늘, 게다가 더는 물기를 보내지 않게 되면서 겨울도 무사히 날 수 있다니 쓸쓸하다고만 했던 초겨울이 문득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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