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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10.25 16:19:05
  • 최종수정2017.10.25 16:31:42
[충북일보] 천고마비의 계절 무심천 근교에 위치해 있는 용화사를 다녀왔다.

전국에 용화사라는 사찰들이 많이 있는데 청주 무심천변의 용화사도 그 가운데 하나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다.

용화사는 매해 벚꽃이 피는 봄철마다 무심천 벚꽃 축제 행사를 열어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곳 중 한 곳이다.

1992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옛 절터인 이곳 용화사 부근에서 청동반자를 발굴했다. 발굴한 청동반자의 명문 판독결과 고려 후기에 큰 사찰이었던 사뇌사 절로 밝혀짐으로써 용화사가 무구한 역사의 고찰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사뇌사는 신라 말이나 고려시대 초에 창건된 대찰로 일부 학계에서는 몽고의 4차 침입 때 유물들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설에는 삼국통일의 의지가 태동하던 선덕여왕대에 미륵불 7본존을 중심으로 70칸 규모의 사찰로 창건돼 신라 화랑들의 심신 단련과 군사들의 충성을 맹세하는 도량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의 병화로 법당은 소실됐고, 미륵불은 대홍수로 무심천에 묻혔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입구는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과 가까워 방문하기에 좋다. 용화사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불교회관을 볼 수 있다. 불교회관 옆에는 문화관광해설사 사무실도 있어서 해설을 부탁드릴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선사가 처음 지었으며, 조선 인조 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영조 18년(1752) 벽담선사가 다시 짓고 용화사라 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용화사의 일화가 담긴 비석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비석에서는 청주 용화사의 일화를 읽어 볼 수 있다. 그 중 일부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1902년 고종의 비인 엄비가 창건하였다. 엄비는 1901년 어느 날 일곱 미륵이 각각 무지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에 엄비가 절을 하니 일곱 미륵은 '우리는 청주의 한 늪에 있는데 어려움에 처해 있다. 절을 짓고 구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청주의 지주 이희복에게 명하여 늪 속에 빠져 있던 불상 7위를 찾아내고 상당산성 안에 있던 보국사를 옮겨 이 절을 지었다. 이후 영친왕 이은의 건강과 축복을 비는 원찰이 되었다."

용화지문이라는 편액이 쓰인 범종루.

용화사에서는 용화지문이라고 편액이 쓰여 있는 범종루를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종교 행사가 있을 때 범종을 울릴 수 있는 장소다.

2층의 누각으로 되어 있을 때 범종루라 하며 소리로써 불음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범종은 청정한 불사에서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 이라는 뜻이며 범종 바로 옆에 위치한 목어는 수중의 어류를 향해 소리를 내보낸다는 상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청주의 중심도량인 용화사는 수행과 포교의 구심점으로 지역발전에 노력하고 있으며 도내 사찰 중 가장 먼저 충북불교대학을 개설해 시민들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용화사에서는 불교 대학 뿐 아니라 문화 교육원도 운영 중이다. 문화센터에서는 사찰 음식, 한문, 서예, 규방공예 강좌를 개설해 생활 속 불교문화를 찾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용화사라고 한 것은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설법도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용화사 창건 당시 사찰규모는 미륵전 15칸, 산신각 칠성각 3칸, 설교전 15칸, 행랑 4칸으로 비교적 큰 규모였다.

용화보전과 팔각오층석탑.

용화보전은 1995년에 중건되었으며 고려시대 석불인 보물 985호 7불상군이 모셔져 있는 법당으로 불교의 문화와 수행방식을 습득하고 자기를 내려놓는 기도도량이다. 용화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높이가 최고 5.5m에 이르는 장육불 등 대형 불상들을 볼 수 있다. 석조7불상군 중에 키가 큰 세분의 부처님인 삼불전이 모셔져 있어 안이 통해 있는 2층 형태로 설계돼 있다.

용화사 석탑 모서리 끝에는 황금빛 종(요령)들이 달려있으며 상륜부 또한 황금빛으로 빛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요령은 불교의식 때 흔들어 소리를 내어 성불의 길로 이끌어 주는 불구의 하나다. 팔각오층석탑은 용화보전을 준공할 때 함께 세웠다고 한다.

용화사에서는 석탑의 모서리 끝에 황금빛 종(요령)들이 달려있으며 상륜부 또한 황금빛으로 빛을 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팔각오층석탑은 용화보전을 준공할 때 함께 세웠다고 한다.

청주 용화사가 특별한 건 석조7불상군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불상들은 무심천 냇가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1902년 고종 연간에 용화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중창하고 1972년 현재의 미륵보전을 짓고 이 불상들을 봉안하게 됐다. 최저 높이인 1.4m의 좌상도 볼 수 있지만 그 외에 모두 장대한 거상들이 많으며 석불장군 뒤로는 1000구의 작은 불상을 봉안할 수 있도록 천불감을 조성했다.

5구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된 이 석조7불상군들은 모두 통견의 법의를 걸친 입상과 좌상으로, 불신이 우아하고 정제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당대 석불거상군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작품의 양식적 특징이나 형식적 내용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부처님으로 조각의 우수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아 현재 보물 제 985호로 지정됐다.

극락전

극락전은 1902년에 건립되었으나 한국 전쟁 때 소실되어 2008년에 재건했다. 극락전 내부에는 유마거사좌상, 미륵보살상 등의 불상들이 안치돼있다. ​법당을 출입할 때는 중앙에 있는 어간으로 출입하지 않고, 법당 양쪽에 있는 옆문을 이용해야 한다.

청주 무심천에 위치한 용화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아주 가깝게 위치하고 있어 잠시 바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용화사를 둘러보면서 심신의 피로를 잊어버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청주시 SNS서포터즈 최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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