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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청년의 희망 만들기…4천265km PCT 종단②

청주대 산악부 정기건 씨의 179일 기록

  • 웹출고시간2017.10.19 17:51:01
  • 최종수정2017.11.09 16:21:11
[충북일보] 5월14일, PCT 종단에 나선지 50일째다. 걸어온 거리만 벌써 1,197km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텐트 안에 온통 서리가 서려있다. 추웠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모르겠다. 눈은 눈대로 많고 배낭은 배낭대로 무겁다. 속도는 안 나고 방향감각도 떨어진다. 미치겠다. 가야할 길은 먼데 컨디션은 최악이다.

마지막 한 시간 걷는데 소리를 질렀다. 짜증이 나고 무엇인가 지긋지긋했다. 12마일(19km) 정도를 어렵게 왔다. 그런데 더 이상 거리를 늘릴 수가 없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몸이 지쳐있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뭐 하는 짓이야 씨 xxxx." 이게 나에게 도움이 될까· 이게 무순 소용이야·

5월16일, 52일차로 접어든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추위에 떨며 끙끙 앓았다. 끓는 물을 넣은 수통을 침낭에 넣어놓고 침낭 위에 패딩, 바람막이를 위에 덮어놓고 잤다. 그런데도 추위를 느꼈다. 동계용 침낭이 그리웠다.

오늘은 휘트니산 정상 공격이다. 이 산엔 원래 정상까지 길이 나있다. 평소엔 그 길만 걸어가면 돼 어렵지 않다. 그런데 100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모두 눈에 파묻혀 있다. 지도 등고선을 보니 촘촘하다. 경사가 높을 것을 예상된다.

그래도 운이 좋다. 날씨가 좋다.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굳은 마음으로 휘트니산으로 향했다. gps가 또 안 터진다. 어렴풋이 짐작으로 길을 잡는다. 마침내 휘트니산을 찾았다.

오르는 방법을 놓고 잠시 고민에 쌓인다. '원래 루트대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직등을 하느냐' 그것이 문제였다. 직등으로 마음을 먹었다. 설사면 경사도가 높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올라갔다.

피켈로 설사 면을 쿡쿡 찌르며 킥킹을 해서 계단을 만들어 올라갔다. 트래버스를 해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위험하다 느껴졌다. 밑에 설사면 각도가 매우 서 있어서 떨어지면 그대로 추락하는 구간이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할 수 있다'를 반복하면서 진행했다. 그렇게 2번의 트래버스를 하고 다시 올라갔다. 마침내 등반 시작 8시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았다. 정말로 아무도 없다.

정상은 평평했다. 무엇인가 성취감이 들었다. 그동안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많은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내려가는 과정이 오르는 과정보다 쉽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걱정이 앞선다.

오후 3시30분쯤 하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7시30분쯤 다시 텐트에 도착했다. 얼굴이 매우 따가웠다. 눈에 반사된 태양빛이 내 얼굴을 타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성취감에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으며 버너로 등산화를 말렸다. 스팸 반 캔에 위스키를 곁들여 혼자만의 소소한 파티를 즐겼다. 이내 곤한 잠 속에 빠져들었다.

5월17일, 53일이 지났다.

역시 추워서 잠을 못 잤다. 오늘은 어제 휘트니산을 올라가느라 쓴 체력을 보충하느라 좀 늦게 일어났다. 그런데 운행 중 gps가 안 돼 길을 잃었다. gps와 지도와 산들을 번갈아 보면서 길을 예측하면서 갔다.

그런데 저쪽으로 가보면 아닌 것 같고 이쪽으로 가면 또 아닌 것 같았다. 왔다 갔다 몇 번 하다가 금방 체력이 떨어져 지쳐버렸다. 링반데룽인 듯했다. gps를 계속해보아도 도무지 현재 내 위치가 나오질 않았다.

소리를 질렀다. 욕도 했다.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설산들 사이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답해주는 무엇 하나 없다. 안 좋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렇게 계속 길을 잃고 식량, 연료, 배터리가 다 소진되면 어쩌나·

오늘 하루를 버린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비우고 텐트를 쳤다. 저녁을 먹고 gps를 다시 켜보니 정상이다. 너무 다행이었다. 얼굴이 너무 따갑다. 특히 코와 인중 부분이 아팠다. 빨리 내려가고 싶다. 가족, 친구, 선후배 모두가 보고 싶다. 너무나도 그립다.

시에라 구간이 기록적인 폭설로 모두 눈에 덮혔다. 과테가 내 모습을 찍어줬다.

5월19일, 55일을 잘도 견뎠다.

전날 마을로 탈출할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gps가 또 안 돼 길을 잃었다. gps를 다시 켜보니 됐다가 다시 안 됐다. 마을로 탈출할 수 있는 지점에서 4마일(약 6km) 정도 벗어나있다.

현재 위치에서 마을로 탈출하기 위해 지도를 봤다. 설산과 지형을 보면서 내가 시간당 걷는 속도랑 거리를 대강 계산했다. 어렴풋이 예측하며 길을 찾아다녔다. 드디어 마을로 탈출할 수 있는 설산을 찾아냈다. 피켈로 설사 면을 찍으며 올랐다.

거기서 한 명의 하이커를 만났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내가 예측한 길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그의 gps로 위치를 확인해줬다. 내가 예측한 길이 대강 맞아떨어졌다. 그도 탈출한다기에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그의 트레일 네임은 '과테' 과테말라에서 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마웠다. 그리하여 설사 면을 걷고 걸어 내려왔다. 도로에 도착하니 그동안의 고생들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상점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고 샤워를 하고 모텔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설레었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욕구에 조금씩 진저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원하고 또 그것을 채워가야만 하는 게 싫었다.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해 비숍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1/n로 모텔비를 계산해 둘이 돈을 아껴 방을 잡았다.

미국에 와서 그토록 그립던 삼겹살과 소주, 김치를 대접받았다. 고맙고 감사한 교포분들.

5월28일이다. 64일이 지났다.

leevining 마을에 도착해 RV PARK에서 쉬었다. 이곳은 모텔보다 싸고 와이파이, 샤워, 빨래를 할 수 있다. 쉬던 중 한국말이 들려 내 귀를 의심했다. 옆쪽을 보았더니 한국 분들이 있다. 교포 분들이 캠핑하러 놀러 오신 것 같았다.

인사라도 드리려고 한국 분 일행이 있는 곳으로 갔다. 사실은 한국 음식이 그리워 접근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걷고 있다 하니 너무 환영해줬다. 고마웠다.

식탁 위에는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삼겹살과 소주, 김치가 있었다. 빨리 먹으라고 하셔서 허겁지겁 삼겹살과 김치를 싸 먹었다. 소주도 마셨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그토록 먹고 싶었던, 너무나도 그리운 맛이었다.

그분들은 성당에서 놀러 오신 거라고 했다. 너무 감사했다. 점심에는 삼겹살과 김치 소주를 배 터지게 먹게 해줬다. 수제비까지 해주시고 저녁에는 닭을 삶아 닭죽까지 해주셨다. 정말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하루 종일 배가 빵빵한 상태로 있었다. 그들은 과일도 내 텐트로 가져다주셨다. 포만감이 너치토록 먹고 또 먹고 먹었다. 감사하며 어쩔 줄 몰랐다. 특히나 김치가 그리웠다고 말했더니 김치도 싸주신다고 했다.

다들 나만 한 아들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너무나도 잘 챙겨주셔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연신 "감사합니다."만 거듭했다. 아들처럼 잘 챙겨주시고 전화번호까지 받아 챙겼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너무 정이 많으신 분들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너무나도 그리운 것들을 채워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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