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김동완

한국문화창작재단 이사장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서 유비는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와룡강으로 갑니다. 와룡강 숲에 접어들던 유비 일행은 공명의 친구 최주평 선생을 만나 차를 한 잔 나눕니다.

"치세와 난세는 늘 공존합니다. 치세가 지속되면 좋겠지만, 언젠가 다시 난세가 찾아옵니다. 가뭄이 있으면 홍수가 찾아오는 것이 하늘의 이치입니다."

최주평 선생은 자연의 이치에 깃든 균형의 의미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죠. 어딘가 조금 기운다 싶으면 자연은 이내 균형을 잡고 맙니다.

지난여름, 청주는 물난리로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되었지요. 고향 청주의 홍수 피해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홍수가 나기 얼마 전, 전국은 가뭄으로 몸살을 앓았지요. 하늘을 향해 기우제라도 올려야 되지 않을까 다들 노심초사했던 적이 있었잖아요. 지나고 보면, 분명 비가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을요.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늘 화창한 날만 연일 계속 이어진다면, 그것은 가뭄이 드는 황량한 사막이겠지요. 얼마 전에 유명을 달리한 마광수 교수의 소식은 또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화려한 수식어도 없고 단순하지만 어쩐지 묘한 울림이 있는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나는 천당 가기 싫어 / 천당은 너무 밝대 / 빛 밖에 없대 / 밤이 없대 /

그러면 달도 없을 거고 / 달밤의 키스도 없을 거고 / 달밤의 섹스도 없겠지 / 나는 천당 가기 싫어

- 故 마광수 시인의 '나는 천당 가기 싫어'

마광수 시인의 시에도 감성적 균형이 자리를 틀고 있습니다. 천당을 보지 못했으니 알 수 없겠지만, 너무 밝은 빛만 있는 세상, 정작 밤이 없는 세상에는 낭만이 사라지겠지요. 드러난 낮이 있으면, 감추어진 밤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밤과 낮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세상이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둑은 싸움이나 승부라기보다는 조화(調和)다."

과거 2천 년 바둑역사에서 가장 강한 자이며, 생존 시 살아있는 기성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던 오청원 선생의 말입니다.

바둑은 똑같은 시간에 상대편과 한 수씩 공평하게 두어가는 게임이죠. 나중에 누가 집을 많이 남기는 가를 따져 승부를 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둑판에는 없는 집이 바둑에는 존재합니다. 바로 반집이죠. 바둑은 흑 돌을 선택한 사람이 먼저 둡니다. 인생으로 보면 살짝 먼저 태어난 거죠. 그 유리함을 공평하게 맞추기 위해 한 발 늦게 착수한 백에게 여섯 집 반을 미리 주는 겁니다. 여기서 반집은 무승부를 방지하기 위한 묘책인 거죠. 그런데 반집으로 승부가 나는 경우는 대부분 고수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대국자들의 실력 차이가 확연하게 나면 중간에서 돌을 거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반집 승부'란 말은 치열한 승부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날 때, 바둑처럼 똑같은 시간을 균등하게 부여받습니다. 삶이란 결국 매일 바둑돌을 한 수씩 두어가는 것과 닮았죠. 바둑에서 승부를 가르는 계기는 욕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잘 두는 프로기사의 바둑을 살펴보면 대마가 죽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서로 철저히 주고받기 때문이죠.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되는 팽팽한 균형 속에 두어집니다. 살얼음판 같은 순간, 욕심이 깃들면 그때 비로소 승부는'쩍'하고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한쪽으로 기우는 거죠. 욕심을 더할수록 계가도 하지 못한 채, 불계패로 승부가 나는 겁니다.

바둑에서'반집 승부'는 조화로운 여정의 다른 말입니다. 그래서 프로바둑기사들은'반집 승부는 신(神)만이 안다.'고 말합니다.

'반집 승, 반집 패'는 어느 누구도 지지 않는, 혼신을 다한 승부에 대한 관람자의 헌사(獻辭)입니다. 우리도'반집 승부'를 위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뚜벅뚜벅 걸어간다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