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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지 않다. 길을 잃어야, 길을 만들 수 있다."

20대 청년의 희망 만들기…4,265km 길 위의 매직

  • 웹출고시간2017.09.28 21:00:00
  • 최종수정2017.09.28 21:00:00

배낭 저 멀리 미국에서 두 번 째로 높은 레이니어 산이 웅장하다. 해발 4392m로 미 본토에서 휘트니 산 다음으로 높다. 세계 최대 적설량을 기록한 곳으로 최대 28m까지 내린다. 빙하와 크레바스가 발달 돼 있다.

[충북일보] 아프고 두려웠지만, 다시 일어나 걸었다.

나는 누구인가.

청주의 한 젊은이가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태평양종단길(PCT·Pacific Crest Trail)을 마쳐 눈길을 끌고 있다.

태평양종단길은 보통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PCT)로 불린다. 국유림 25개 국립공원 7개, 총 4천265km 을 걸어야 한다. 대륙종단길(CDT, 5000㎞), 애팔래치안 트레일(AT, 3500㎞)과 함께 세계 트레커들에게 꿈의 길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청주대 산악부 정기건(25·체육교육과 2년 휴학)씨다. 그가 PCT 종주에 나선 건 지난 3월25일이다. 그런 뒤 9월22일까지 무려 179일을 걸었다. 하루 최소 12시간 이상 30km를 걸어 완주했다.

그가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길은 전인미답이었다. 국내 출발 전 트레킹 서적과 경험자의 블로그를 뒤져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정작 현지에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너무나 많은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폭설은 수십 센티미터 쌓이기 일쑤다. 순식간에 길을 지워 정 씨를 당황시켰다. 눈길과 얼음길을 헤매느라 하루 이동 거리가 대폭 줄어들 때가 많았다. 등산화는 금방 젖어 걸음을 더디게 했다.

시에라 국유림에서는 몇 번이나 길을 잃고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삶이란 무엇인가'란 떠올린 것도 이때다. 삶의 주인공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이때 떠올랐다. 미지의 세상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각오였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휴학계를 내고 학교를 떠났다. 그런 다음 4,265km의 PCT 순례여행에 몸을 담갔다. 순례 내내 '나는 행복한가'에 천착했다. 지칠 때마다 자신에게 외쳤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거의 다 왔어."

그는 결국 4,265km를 완주했다. 그리고 고통이 주는 행복을 깨달았다. 하나하나 이뤄가는 기쁨을 알게 됐다. 이루고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궁극적으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그는 텐트와 침낭과 식량을 배낭에 짊어지고 걸었다. 9개의 산맥과 사막과 황무지를 지나기도 했다. 걷는 동안 폭염과 폭설과 폭풍우를 겪었다. 계곡물에 빠지기도 하고 모기떼와 싸우기도 했다.

마른 식량을 물에 녹여 먹기도 하고 때론 그대로 참았다. 식량이 바닥나면 가까운 마을로 내려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때론 고산증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타는 듯한 더위를 피해 한 밤중 트레킹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무섭고 힘든 건 여전히 외로움이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참기 힘들었다. 무거운 배낭이나, 뜨거운 사막, 발바닥 물집과 무릎통증은 그래도 참을만한 고통이었다.

그는 물이 부족해 손수건에 흙탕물을 몇 번이고 걸러서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 지점까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완전히 갇혔다는 생각에 혼자 욕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그를 울게 한 건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혼자라는 생각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걸으며 만난 경이로운 자연들은 위로였다. 거기서 만난 대화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으며 자신의 길 찾기에 성공했다.

내려놓고 보니 비로소 하나둘씩 찾을 수 있었다. 까만 밤 사막 하늘에서 빛나는 별처럼 선명했다. 그에게 기쁨의 크기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내년에 복학을 할 예정이다. 2020년엔 해외 원정에 참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두렵지 않다. 길을 잃어야, 길을 만들 수 있다." 그의 말에서 희망이 오버랩된다.

/함우석 주필

청주대 산악부 정기건 인터뷰

함-국내 길도 좋은 곳이 많은데 악명 높은 미국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PCT 트레킹을 하게 된 동기는 뭔가.

정-"어느 날 갑자기 삶의 좌표를 잃었다. '왜'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왜 수업을 받아야 하는지, 이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폭풍처럼 몰려들었다. 대학교수나 주변 친구들에게 질문을 해도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 삶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선 걷기여행이었다."

함-트레킹을 하면서 아니 트레킹을 마치고 뭘 찾거나 얻은 게 있나.

정-"불확실한 미래에 눈앞이 깜깜했다. 뭘 해야 할까, 무작정 떠나기로 했다. 그래도 6개월 준비 기간을 거쳐 6개월 걷기에 성공했다. 걷기를 마친 후 조금 허무했지만 찾은 게 있다. 직업과 인생의 목표를 얻으려 했는데 좀 더 가까이 간 듯해 다행이다. 앞으로 도전적으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함-트레일을 하는 동안 음식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

정-한 달 치 음식을 한국에서 준비해 갔다. 한 달이 지나자 식량이 떨어졌다. 마을로 내려가서 4~5일치 식량을 사서 떨어지면 다시 마을로 내려가 식량을 구하는 일을 반복했다. 출발 전에 미리 재보급 상자를 각 재보급지 우체국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남은 거리를 계산해 4~5일 단위로 나눠 또 다른 재보급지로 보내는 방식을 이용했다."

함-그래도 길 위에서 반 년 동안 식량을 지고 가며 먹고 자고 자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정-"물론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트레커가 간편식을 애용한다. 아침에는 또띠아에 잼을 발라 먹거나, 우유 파우더에 물을 부어 시리얼과 함께 먹는다. 점심은 초코바나 에너지바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저녁엔 밥을 지어 고추장과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다."

함-장장 4,265km을 6개월 동안 걷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정- "장거리 걷기로 부은 발목을 부여잡고 진통제로 연명하며 잠을 청해야 했던 밤들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통증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커갔다.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다."

함-앞으로 계획은.

정-"우선 내년에 다시 학교에 복학할 예정이다. 복학 후 학업을 마치고 선배들이 추진하는 원정산행에도 참여하고 싶다.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나 인생의 정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도전의식을 더 키우려한다."

Pacific Crest Trail(PCT)

왜 인생의 끝에서 길을 택할까. 그것도 아주 먼 길을 걷는 걸까. 길을 걷는 건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에는 3대 트레일이 있다. 서부 태평양 산맥에 걸쳐 있는 태평양종단길(PCT)과 대륙종단길(CDT), 애팔래치안 트레일(AT)은 세계 트레커들이 완주를 꿈꾸는 길이다. 미국 대륙을 위에서 아래로 종단하는 3개 트레일이다.

그중 퍼시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PCT)은 지옥처럼 멀고 험한 길이다. 무려 4,285km다. '악마의 코스'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사막에서부터 눈 덮인 고산지대, 9개의 산맥, 화산지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다.

PCT에 도전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매일 30㎞씩 150일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도 연간 125만 명이 걷는다. 물론 포기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대장정의 끝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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