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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SNS서포터즈 - 옥화구곡 가을을 걷다

옥화2경 용소, 옥화3경 천경대 그리고 옥화4경 옥화대

  • 웹출고시간2017.09.27 17:55:11
  • 최종수정2017.09.27 17:55:11
[충북일보]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삼거리에서 좌회전, 근처에 차를 잠깐 세우고 도로 옆으로 산뜻하고 깔끔하게 서있는 옥화9경 안내판을 보며 내가 찾아갈 옥화2경 용소, 옥화3경 천경대 그리고 옥화4경인 옥화대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 넣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멀리 운암교를 바라보니 좌구산과 속리산에서 발원한 넉넉한 수량의 물이 하나로 합쳐서 달천(박대천)을 향해 쉴 새 없이 흐른다.

◇옥화2경 용소

다시 차에 올라 달천 변을 따라 약 2킬로미터쯤 하류로 가면서 오른쪽 차 창문을 통해 강변 너머를 힐끗 쳐다보니 산 능선과 능선이 겹치는 곳 주변으로 짙은 산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언덕 아래 달천은 지난밤에 내린 비로 탁해진 흙탕물을 한 아름 안고선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흐르다가 갑자기 포효하듯 거칠게 소용돌이를 친다. 이곳이 바로 옥화9경 중 제2경인 용소이다.

옥화9경의 대략 12킬로미터 구간 되는 달천 물줄기에서 수심이 제일 깊은 곳 그리고 옛날 옛적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 용이 하늘로 승천하던 날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여인의 목격으로 용은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이무기가 되었다는 허망한 사연이 공존하는 그런 곳...

용소 상류와 용소 앞, 강변을 따라 자리 잡은 예쁜 펜션들이 초가을 내린 비로 상큼하다 못해 싱싱해 보인다. 이번 여름 청주지역의 수마로 인하여 이곳 용소주변의 펜션들 또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과 피해주민들의 강한 복구의지로 예전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어 달천을 즐겨 찾는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 더없이 반갑다.

용소를 뒤에 남겨두고 달천 하류를 따라 동쪽방향으로 대략 1.5킬로미터 내려가면 탁 트인 자갈밭을 마주하고선 옥화9경의 제3경인 천경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옥화3경 천경대

천경대, 수직으로 이루어진 절벽과 함께 달빛이 맑은 물에 투영되어 마치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처럼 기암절벽과 함께 운치 있는 도로변 소나무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피서객들뿐만 아니라 야영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명소 중의 명소이다.

◇옥화4경 옥화대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소재지로부터 동남방향으로 7킬로 지점에 위치한 옥화리, "개울가 절벽위에 참나무와 소나무 고목들이 무성한 동산으로 들판에 옥처럼 떨어져 있다."하여 옥화대라 이름을 붙인 곳으로 제3경인 천경대에서 새로 정비가 된 도로를 따라 300여 미터만 가면 왼쪽으로 마을을 지키는 거대한 느티나무와 함께 서있는 옥화서원이 눈에 들어온다.
1871년 철폐 되었다가 이후 1989년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다시 세웠다. 내부에 "숭현사"라는 편액(현판)을 달고 마당 앞에는 "옥화서원"이라는 현판을 내건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이곳 마을 선조들의 사당인 경모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걸어서 들어가니 오른쪽으로 만경정이 보인다. 만경정은 둔암 윤사석이 연산군 때 거듭되는 사화로 현인군자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고 가족들과 함께 미원으로 내려와 옥화대 위에 지은 정자로 지금은 파평윤씨 문중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26년에 허물어져 1989년에 다시 중건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콘크리트 기와정자로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간에 양회(토목이나 건축의 재료로 쓰는 접합제로 물에 이긴 것을 말리면 돌처럼 단단해지는 잿빛의 가루)바닥으로 되어있으며 정자 안에는 만경정중수기를 걸었고 바깥에는 "만경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옥화대의 정자는 만경정, 추월정, 그리고 세심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추월정과 세심정은 달천이 굽이쳐 흐르는 강 언덕위에 있는 정자로 이곳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은 두 곳 중 한 곳만을 둘러보고 가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추월정이 나오고 우측으로 나있는 길을 ㅤㅉㅗㅈ으면 서계 이득윤선생의 유허비와 함께 세심정이 시야에 들어온다.

세심정은 인조 24년 1646년 윤승임(1603~1688)이 미원면 옥화리에 세운 정자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고종 4년인 1867년에 중건하고 1966년에 다시 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주춧돌 위에 육각기둥을 세운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정자로 고종 2년인 1865년에 송근수가 짓고 송우인이 쓴 세심정중건기와 고종5년인 1868년에 김술현이 쓴 세심정중건기가 정자 안쪽에 나란히 걸려 있다. 정자 바깥으로 정조 24년인 1800년에 송환기가 쓴 "세심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나 최근 청주시에서 시행하는 정자의 보수공사로 현판을 떼어 따로 보관을 하고 있다.

조선 광해군 1년인 1609년 서계 이득윤(1553~1630)이 옥화리 옥화대위에 세운 경주이씨의 정자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광무 2년인 1898년에 중건하고 1985년에 개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지어진 겹처마 팔작지붕형태를 갖춘 목조정자로 청명한 가을 달을 닮았다고 하여 추월정이라 부른다. 정자 바깥에는 화산 권용규가 쓴 "추월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으나 이 현판 또한 보수공사로 따로 보관중이다.
이곳 세심정과 추월정에 올라 언덕 아래로 고요히 흐르는 달천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과거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을 하여 유유자적, 자연을 벗 삼아 문재를 겨루던 선비들과 함께 정자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마을로 진입하는 입구에 있는 너른 공터위로 나무를 심고 땅을 고르는 작업이 한창이어서 마을주민에게 물어보니 공원을 만드는 중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저것 볼거리로 가득 차 있는 이곳에 공원까지 세워진다면 방문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인 것 같아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넓지 않아 도로변에 차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으니 경모사주차장(5-6대 주차가능)을 이용하면 되고 화장실 외부가 다소 낡아 보이지만 실내 시설은 깨끗함으로 부담 갖지 말고 사용할 수 있다.

/청주시 SNS서포터즈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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