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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9.26 16:53:48
  • 최종수정2017.09.26 16:53:48
[충북일보]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1592년 임진왜란에 이은 7년의 전쟁이다.

올해는 정유년이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발발 후 딱 420년이 지난 세월이다. 420년을 십이간지로 따지면 불과 35번 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최악의 북·미 관계 속에서 임진왜란·정유재란 발발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적지 않다.

국운 외면한 東西 당쟁

1583년 율곡 이이는 선조를 찾아가 '10만 양병설'을 건의했다.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얼마 뒤 일본의 조선 침략설이 확산되면서 선조는 황윤길과 김성일을 일본 사신으로 보냈다. 여기서 황윤길은 침략 가능성이 높으니 전쟁에 대비하자고 했지만 김성일이 반대했다.

그리고 10년 뒤 일본은 20만이 넘는 군사를 이끌고 한반도를 침략했다.

당시 집권세력은 동인이었다. 동인 서울 동쪽을 중심으로 추후 영남세력을 포괄하는 정치 세력을 말한다. 당시 동인은 개혁적 성향을 가졌고, 서인은 수구 세력으로 간주됐다.

동인과 서인이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놓고 당쟁에 몰두하면서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급기야 인류 최악의 적폐인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

여기서 특징적인 사례는 당시 동인의 핵심이었던 서애 류성룡 역시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보면 전쟁 가능성이 있지만, 이 같은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니 전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은밀하게 군사적 시스템을 정비하는 흐름을 유지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류성룡은 그래서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발탁했다. 이에 대한 공과는 두고 두고 역사에 회자되고 있다.

정명가도(征明假道),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을 정벌하고자 하니 길을 빌려달라고 조선을 압박했다. 조선은 안중에도 없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호전적 기질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400년이 훌쩍 지난 뒤 30대 초반의 김정은은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감행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싸움이라고 주장한다. 남한을 인질로 미국·일본과 일전을 벌이겠다는 시나리오다. 이는 마치 조선을 인질로 명나라를 치려고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략과 닮은 모습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명가도와 김정은의 '정미가도(征美假道)'에 비견될 수 있다. 우리에게 김정은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보다 나을게 없는 역대급 미친놈으로 비춰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여당의 정치적 철학은 개혁이다. 마치 동인과 비슷하다. 보수정당은 수구로 볼 수 있다. 서인과 닮은꼴이다.

신기하게도 보수 야당은 전쟁 가능성을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다. 여당은 전쟁 가능성을 인정하면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면서 한미 공조를 통한 사드배치와 핵 잠수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역시 동인 류성룡이 이순신 장군을 발탁하고 군사적 시스템을 정비한 사례와 비슷하다. 임진왜란 발발 전 상황과 비슷한 사례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론 분열의 與野 정쟁

국민들은 한반도 전쟁을 반대한다. 군사적 압박도 좋고, 평화적 해결도 좋은데 인류의 파괴를 불러 올 전쟁은 용납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쟁을 중단하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원 보이스'를 이뤄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야당이 주장하는 강대 강 대결을 통한 북한의 완전한 굴복과 여당의 남북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다. 선택은 국민들의 몫이다. 국민들에게 의견을 존중해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핵을 머리에 얹고 사는 시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결국 해법은 협치(協治)다.

1597년의 정유재란 이은 2017년 한반도 전쟁 가능성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우리 국민들은 12년에 한번 씩 돌아오는 정유년을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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