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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버려도 한참 전에 버렸어야 했다. 헐거운 자루가 걸핏하면 덜컥 빠진다. 주방용 칼도 아니고 한낱 과일 깎는 과도였으나 쥐기가 편하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과도가 얼마든지 있건만 그냥 쓰고 있는 게 벌써 2년째다. 오이를 채 칠 때도 칼날이 얇아서 모양이 가지런하고, 텃밭에서 푸성귀를 도려 올 때도 만만하다. 낡아서 버리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쓰다가 지난 설에 큰 맘 먹고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새로 쓰기 시작한 칼이 손에 영 서툴렀다. 산뜻한 빛깔에 모양도 예쁜데 칼날이 두꺼워 채를 쳐도 투박하다. 아무려면 새 물건이 낫겠지 하고 사나흘 쓰다가 끝내는 마당 한구석에 버려둔 것을 꺼내서 다시 또 쓰고 있다. 옷이든 물건이든 잘 버리는데 자루까지 시원찮은 그 칼은 꽤 오래 되었다.

검은 색 니트 원피스도 제법 오래된 옷이다. 재질이 시원해서 봄 가을에도 티셔츠를 받쳐 입거나 스카프 한 장 매면 무난히 입을 수 있다. 겨울에는 또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코트를 걸친다. 그렇게 입은 게 벌써 6년, 하도 입어서 싫증을 내다가 다시 꺼내 입은 게 또 3년이다. 특별히 어떤 옷은 입고 싶어도 불편한 게 있다. 오래 되어 미어지기까지 한 그 옷도 타이트한 디자인이라 끼는 편인데 길이 들어서인지 어색하지가 않다.

오늘 아침 동무네 집에서 모처럼 명곡을 들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주방과 화장실 외에는 전부 오디오가 설치되었다. 이름도 모를 각양각색의 스피커가 가득 차 있고 대략 40년 전 물건이란다. 주로 부품을 모아 조립한 거라는데 아무리 좋아도 오래 된 게 뭐 대단하랴 했다가 유달리 깔끔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놀랐다. 클래식은 클래식대로 중후한 느낌이고 팝송은 또 신나고 경쾌해서 짜증스럽지 않다.

클래식은 좋아하지만 유 튜브나 멜론으로 듣는 내게 스피커로 들으면 훨씬 좋다고 강조하는 동무다. 마음먹고 가서는 다양한 스피커에 놀랐고 나로서는 그게 그것 같은데 스피커마다 소리가 다르기는 했다. 내가 봐도 어떻게 조절하면 첼로 소리가 부드럽고 이따금은 장중한 피아노 소리. 클라리넷과 플롯 등의 관악기도 훨씬 예쁘고 중후하게 들린다. 교향곡이든 팝송이든 볼륨이 커질수록 악상이 살아난다.

무엇보다 기악곡이든 성악곡이든 스피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시스템이 필요하고 나름 조립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조립은 또 누군가도 할 수 있지만 수십 년 동안 들으면서 익숙해졌을 것이다. 낡아서 부품이 상할 때는 버릴 수밖에 없지만 자기 평생은 충분히 들을 수 있다면서 흐뭇해하던 표정. 아름다운 소리도 끝내는 길들이는 과정이었을까.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으로 아까의 명곡을 꺼내 들으니 거짓말처럼 답답한 소리. 그냥저냥 들을만했는데 모처럼 들은 오디오가 화근이다. 그렇다고 덜컥 살 수는 없고 허구한 날 동무 집에 갈 수도 없는 노릇. 무심히 들을 때마다 세상을 전부 가진 듯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기다 보면 오디오까지는 아니어도 원하는 만큼 재생되겠지. 몇 십 년 간 고치고 길들이다 보니 수 천 만원 짜리 오디오나 되는 듯 아름다운 소리를 즐길 수 있다는, 그게 어디 보통 일이었을까.

새삼스러운 말로, 새 거라고 다 좋기야 할까 싶은 마음. 비싸다고 마음에 들 것도 아닌 게 물건도 정이 든다. 체취가 깃들고 손때가 묻은 거라면 단순한 물건일 수는 없다. 그래 우리 누군가의 유품을 대할 경우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지 모르겠다. 물건이야 쓰고 버리는 거지만 아무리 해도 버릴 수 없는 물건 하나쯤 있다면 고답적이다. 인생도 알고 보면 길들이기다. 이따금 최고급 오디오가 부럽기는 해도 이제는 손때 묻은 자기 오디오가 훨씬 좋게 느껴진다는 그 동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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