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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8.23 15:08:00
  • 최종수정2017.08.23 15:08:00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증평에서 괴산을 가는 길에는 터널이 뚫리고 4차선의 포장도로가 생겨 빠르고 쉽게 갈 수가 있지만 이 길이 생기기 전에는 그야말로 괴산이 산골 마을임을 알게 하려는 듯 산굽이를 돌고 돌아서 높은 재를 넘어가는 험로를 가야만 했다.

이 길이 비포장도로인 시절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초행길인 사람들에게 가장 혼란을 주는 곳이 바로 사리와 대사리였다. 증평을 출발하여 한참을 가다보면 첫 번째 버스가 정류하는 곳이 사리이다. 사리를 출발하여 달리다보면 버스가 뒤로 미끄러질 것만 같은 험한 모래재를 힘겹게 넘어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면, 괴산 종점에는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았는데 괴산에 다 왔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곳이 바로 대사리라는 곳이다. 괴산중학교와 괴산고등학교를 가려면 사리에서 내리지 말고 대사리에서 내려야 한다는 충고를 여러 번 듣고도 초행자들은 아무 생각없이 사리에서 내렸다가 다음 차를 기다려 다시 가야 하는 수고를 겪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던 것이다.

이렇게 혼란을 야기하는 사리와 대사리라는 지명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진 이름인지 이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궁금하게 생각해 왔고 또 그런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되어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언뜻 보면 대사리는 사리의 앞에 '대(大)'자가 붙어서, 사리라는 마을보다 더 큰 마을이라는 의미로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사리'라는 지명을 찾아보면

경기 평택시 서탄면 사리(寺里), 전남 신안군 흑산면 사리(沙里), 경북 영양군 청기면 사리(寺里),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사리(寺里) 등 '절골'을 한자로 표기한 사리(寺里)와 '모래'의 의미를 지닌 사리(沙里)로 크게 나뉘어진다.

경남 창녕군 계성면 사리(舍里)는 신라시대부터 大興寺(대흥사)를 비롯한 절이 많았으므로 寺里(사리)→舍里(사리)라 불렸다고 전해지는 것로 보아 '사리(寺里)'계로 볼 수 있으며, 경남 합천군 묘산면 봉곡리는 본래 합천군 심묘면 지역으로서 지형이 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새골 또는 봉곡, 사동, 사아촌이라 하였다가 1914년 일제 강점기 때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리(寺里)로 묘산면에 편입되었다가 2012년 7월 25일 일제시대 이전 자연마을 이름인 봉곡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므로 역시 '절골'의 한자 표기인 '사리(寺里)'로 볼 수가 있다.

경북 청도군 각남면의 사리(沙里)는 대구에 속한 각초동면의 사외(沙外)동이 지방행정 개편시 동명이 바뀐 마을이며 내사(來舍), 외사(外沙), 상사(上沙), 하사(下沙) 등 동명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도 사(沙)자는 꼭 붙어 다녔다. 그런데 '모래'의 의미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원래 이름은 싸리골로서 싸리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싸리를 '사(沙)'로 음만 따서 표기한 것이므로 다른 지역의 '사리'와는 다른 '싸리골'이라는 지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絲里)는 골짜기가 실처럼 길고 가늘다고 하여 실골이라 하다가 한자로 표기할 때 사리(絲里)가 되었다고 전해지므로 '사리'의 일반적인 지명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괴산군의 사리면은 본래 괴산군 서면이었는데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서면의 소재지인 사장리(沙場里)와 북상면의 소재지인 이곡리(梨谷里)의 이름을 따서 '사리면(沙梨面)'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한자 표기에 '모래(沙)'가 들어간 것은 '사담(沙潭)'이라는 곳에서 연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대사리(大寺里)는 본래 괴산군 일도면의 지역으로서 큰 절이 있었으므로 옛날부터 한절골이라 불리어 오던 곳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사리(大寺里)'가 된 것이다.

사리는 '모래못(沙潭)'에서 연유된 '사리(沙里)'이고 대사리(大寺里)는 지명에 널리 쓰이는 '사리(寺里)'에 '대(大)'가 붙은 형태의 지명으로서 '큰절골, 한절골'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잣골 < 절골'의 변이 과정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름으로 볼 수가 있다.

따라서 대사리란 '큰 절이 있는 지역의 마을'이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으나 다른 지역에 많이 나타나는 '절골'과 마찬가지로 '큰 산골에 있는 마을'의 의미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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