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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과 12시간 동행…쓸려간 터전, 무너진 일상

"먹고 씻고 자는 삶의 기본이 모두 무너져
이재민과 이재민이 아닌 사람을 구별해야…
구호물품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 웹출고시간2017.07.20 20:31:29
  • 최종수정2017.07.20 20:32:17

19일 덕벌초등학교 임시 대피소의 한 벽면에 구호물품이 쌓여있다.

ⓒ 조성현기자
[충북일보]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홍수로 집을 잃은 주민들의 눈가는 주름이 깊게 패였다.

아이부터 중장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이재민들이 청주시 청원구 덕벌초등학교 실내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있다.

19일 오후 7시 장암 배드민턴 동호회 사람들이 이재민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와 이재민들에게 늦은 저녁 식사를 제공했다.

"집을 치우다보니 제때 식사를 먹을 수가 없어."

19일 덕벌초등학교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장암 베드민턴 동호회에서 제공한 저녁 식사를 배식받고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식사를 받아가는 김모(여·79)씨가 말했다.

하나, 둘씩 이재민들이 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수해 현장을 치우다 늦게 도착한 이재민들은 먹을 게 없어 구호물품으로 지급된 햇반과 라면을 먹었다.

"이거라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야, 첫날 여기 왔을 땐 라면밖에 없었어. 라면만 하루 세끼를 먹었어."

한 이재민은 당시를 떠올리자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대피소 안에는 전자레인지 한 대와 휴대용 가스레인지 두 대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청주시 민방위'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시청과 청원구청에서 나온 주민복지과 직원 2명이다.

19일 밤 11시께 대피소의 입구쪽에서 시구청 직원 2명이 눈을 붙이고 있다.

이들은 2조 2교대 근무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 함께 생활했다.

두 대의 가스레인지 불은 꺼질 줄 모른 채 연신 타올랐다. 이재민들의 식사를 책임지기 위해서다.

이재민들 챙기느라 주민복지과 직원들은 자신들의 끼니를 미뤘다.

"직원들이 뭘 알겠어. 서로 고생하는 거지."

최종근(60) 주민대책위원회 회장은 그 모습을 딱하게 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나마 매트랑 담요가 지급돼서 밤에는 편히 잘 수 있겠어."

대피소에 온 첫날부터 삼일동안 덮고 잘 이불도 없어 옷 한 벌에 의지한 채 두루마리 휴지를 머리에 괴고 잤다.

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을 반겨준 대피소의 환경은 한 없이 열악했다.

미흡한 대피소 환경이 그나마 개선되자 이재민들의 얼굴에서 조금이지만 희망이 보였다.

"도지사님 만나려고 집 치우던 도중에 나왔는데…"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밤 8시께 수해 복구 현장을 치우다 늦게 대피소를 찾은 송모(여·44) 씨의 표정이 씁쓸했다.

도지사가 밤 8시 30분에 대피소를 방문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끝내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도지사를 대신해 밤 9시께 시청 관계자 두 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오랜 시간 이재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시 관계자는 "침수된 집 도배·장판 비용을 알아봤다"며 "한 집당 50만~60만 원의 자재비가 드는데 문제는 인건비다. 자원봉사센터에 연락해 도배·장판을 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남녀노소가 칸막이도 없이 한 장소에서 생활하려니 너무 불편하다"는 한 주민의 말에 곧이어 다른 주민도 "체육관에서 씻을 수가 없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씻을 수가 없다"고 대피소의 애로사항을 털어놨다.

시 관계자는 "인근 아파트 3곳의 경로당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며 "낮에는 체육관에서 지내시다가 밤에 잠만 거기서 주무시는 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경로당은 할아버지, 할머니 방이 따로 나눠졌고 샤워시설도 잘 갖춰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주민들도 시 관계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30분 뒤 청원구청장이 찾아왔다.

한 주민은 구청장에게 "이재민과 이재민이 아닌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구호물품 퍼주니까 정작 구호물품이 필요한 이재민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여기가 대피소인지 동네 쉼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젖은 가전제품들을 말리려고 밖에 꺼내놨는데 전문적으로 그 물건들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다"며 "내덕동 치안에 좀 더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구청장은 주민들의 이야기에 "내일 오전에 통장들과 자리를 마련해놓겠다"며 "빨리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충북일보 조성현기자가 주민들과 함께 12시간을 보내며 잠을 청한 텐트.

밤 11시 취침시간이 찾아왔다.

고된 하루를 보낸 이재민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씩 잠들었다.

20일 새벽 5시께 하나, 둘씩 이재민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목에 수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식사는 따로 준비돼지 않아 구호물품으로 나온 빵과 참치캔을 손에 들고 대피소 밖으로 나간다.

"해도 떴는데 대피소에 있으면 뭐해. 조금이라도 더 치워야 빨리 집에 들어가지."

피해 지역으로 향하는 이재민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한 마디씩 던졌다.

/ 조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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