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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용암중학교 교사

가까운 벗이 청주 인근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도자기 굽고 자연을 즐기는 남편의 취향을 반영한 흰 색 외관의 집은 아름다웠다. 집 앞으로 낮은 능선의 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펼쳐진 전망도 무척 좋았다.

뒷마당이 널찍하고 특이하게도 본채 옆에 앞마당을 대신하는 '옆 마당'이 본채보다 낮게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살짝 '삶의 불편함'을 품고 있는 집이었다. 실외 공간에 비해 실내는 단출한 식구에 걸맞게 그리 크지 않았다. 과시의 표정이 없는, 부부의 질박한 삶이 잘 구현된 집이었다.

그 집 안팎을 거닐다 보니 어린시절을 보냈던 시골집이 자꾸 떠올랐다. 마당과 마루를 이어주던 '뜨락', 그를 디디어 마루에 오르고 내려가는 행동의 곡절, 햇볕 들어차는 앞마당과 서늘한 그늘의 뒤란이 만들어내는 삶의 명암……. 집은 이렇듯 삶의 곡진함을 품는 것이어야 한다. 어른들께 혼나고 앞 냇가에 발을 담그거나 뒷동산 참나무 밑에 앉아 있다 보면 서러운 마음이 슬며시 풀리곤 했다. 사방으로 자연스레 열린 집의 구조는 방 밖을 나서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의 치유를 얻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 쌓인 이런 체험은 삶의 기복에 쉽게 낙심치 않는 면역력을 길러 주었다 할까.

그에 비해 현대인의 가장 대표적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과연 집의 온기를 제대로 갖춘 공간인지 의문이다. 대기 속으로 온몸을 쉽게 내어놓을 수 없는 아파트는 단지 평면적으로 구획된 공간일 뿐.

지난 달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지께 제일 마음에 남는 곳을 여쭤보니 멋지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소보다 의외로 폐허만 남은 폼페이를 꼽으셨다. "사람들 살던 흔적이 이상하게 자꾸 마음에 맺히더라." 전에 나도 폼페이에서 느꼈던 소회를 떠올리며 역시 핏줄은 닮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여행기를 다시 찾아보았다.

"어쩐지 폼페이의 허물어진 건물들은 내가 어릴 적 냇가에서 친구들과 쌓으며 놀던 모래집들을 자꾸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이 집 저 집에 여러 용도의 방들을 가득 만들어 놓고, 다른 집으로 길도 내면서, 자신만의 집에 들어 앉아 있을 때의 안온함과 다른 집들과의 소통에 재미를 느끼던, 그 소꿉장난하던 기분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나의 마을, 하나의 도시가 갖는 미학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런 닫힘의 아늑함과 열림의 소통 구조에서 오는 즐거움 아닐까.

그러한 공간 구조의 흔적이 이천 여 년 전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일상을 그대로 내게 '소통'시켜 주는 것이었다. 저물 무렵 베수비오산의 매끈한 능선을 핥고 있는 도화빛 햇살 때문이었는지,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충만한 삶의 관능이 아직도 서려 있는 듯 했다. 특히 빵공장 터에 남아 있던 아궁이들은 우리의 시골집 부엌 아궁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 친근감이 더했다. 마차 바퀴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골목길들을 걸으며 나는 폐허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퍽 유쾌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만약 폼페이의 주거 형태가 오늘날의 아파트와 같았다면 과연 그 생의 흔적들이 저리 생생하게 남을 수 있었을까.

'시냇가에 비로소 살 곳을 마련하니 / 흐르는 물가에서 날로 새롭게 반성함이 있으리.' 퇴계의 시처럼 어린 시절을 시골 물가에서 보냈으나, 이제는 칸칸이 포획된 거대한 아파트에서 나 또한 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현재 몸담고 있는 이 아파트의 부박한 삶에도 위무는 있다. 십여 층의 높은 곳에만 살다 빌라 형태의 아파트 2층으로 온 지 1년이 되었다. 지인들은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것이지 왜 오래된 곳으로 가느냐 의문을 가졌지만, 현관문을 여는 순간 창문 옆으로 잣나무들이 손닿을 듯 도열해 있고, 그에 이어 뒷산 숲이 펼쳐진 것을 보았을 때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매일이다시피 처음 듣는 새소리, 나뭇잎에 듣는 빗소리, 신선한 숲의 향기가 이 평면적 공간을 입체적으로 늘 새롭게 신생시켜 놓는다. 자연의 은택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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