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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전 충청일보 편집국장·칼럼니스트

풍류 시가로 당대를 주름잡던 기생 황진이. 최고의 양반들을 유혹하여 숱한 염문을 뿌렸지만 마음 한 구석에 공허한 것이 있었다. 총명한 문학소녀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부족함은 바로 학문이었으며 올바른 스승을 찾는 일이었다.

황진이는 개경 성거산에 은거한 화담(花潭) 서경덕이 학문이 깊다는 평판을 듣는다. 그녀는 결심을 하고 움막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제자가 되겠으니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황진이가 처음 본 화담은 매우 총명한 눈을 가진 욕심 없는 학자였다.

황진이는 화담과 학문을 논하는 사제로서 정의를 맺었다. 어느 날 밤이 되자 장난 끼가 발동한 황진이는 화담을 시험하려 은근히 유혹의 손길을 보냈다. 조선 중기 허균은 이런 비화를 자신의 문집에 남겼다.

-진랑은 화담의 사람됨을 사모했다. 반드시 거문고와 술을 가지고 화담의 거처에 가서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면서 즐긴 다음에 떠나갔다. 매양 말하기를 '지족선사가 30년을 수양했으나 내가 그의 지조를 꺾었다. 오직 화담 선생은 여러 해를 가깝게 지냈지만 끝내 관계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성인이다'라고 했다...(하략)-

황진이는 자신을 기생이 아닌 제자로 예우한 화담을 존경했다. 그리고는 유명한 '송도삼절(松都三絶)'이란 명구를 만들었다. 자신과 화담, 그리고 박연폭포를 송도 제일로 꼽은 것이다. 스승 화담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황진이는 다음과 같이 애도한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소냐 /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노메라'

일설에는 황진이가 스승을 잃은 후 화담의 발자취가 어린 속리산, 금강산등 명산을 남복으로 유람했다고 한다. 황진이가 남자였다면 아마 화담을 계승한 명망 있는 학자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퇴계(退溪)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관아에 두향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두향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 퇴계를 보는 순간부터 깊이 존경하게 된다. 두향은 거문고와 시가에 뛰어났다고 하며 두 사람은 시문(詩文)을 화답하는 사이가 됐다.

두향은 퇴계가 매화분(梅花盆)을 좋아하자 자신이 아끼던 것을 선물했다. 퇴계는 두향이 준 화분을 가장 아꼈다고 하며 단양을 떠날 때도 가져갔다. 여느 지방수령이면 총애하는 기생을 첩으로 삼거나 데리고 가는 것이 능사였다.

그러나 학자 퇴계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지켰다. 퇴계가 두향을 고향으로 데리고 갔다면 존경받는 스승이자 대학자가 되지 못했을 게다. 두향은 멀리서 퇴계를 평생 사모하며 살다 그가 죽은 날 단양 강선대에서 물에 뛰어들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서자 출신으로 집이 가난하여 스승이 없었다. 독학으로 공부하는 중에 실학에 밝았던 박지원(朴趾源), 유득공(柳得恭)을 친구이자 스승으로 삼아 이들에게 학문을 배웠다. 책을 살수 없었던 이덕무는 책을 빌려 수 만권을 베꼈으며 장서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어느 날은 쌀이 떨어지자 아끼던 책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날 저녁 마침 유득공이 찾아왔다. 유득공은 이덕무의 상심을 알아차리고는 집에서 좌씨전(左氏傳)을 들고 나와 팔았으며 이 돈으로 술을 사 함께 마셨다고 한다.

요즈음 스승은 많지만 참스승이 없다고 한다. 화담이나 퇴계가 누대에 걸쳐 존경을 받았던 것은 스승으로서 세속의 유혹에 물들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스승의 날, 어떤 유혹에도 학자로서 정도를 걸은 화담이나 퇴계, 책을 팔아서 까지 제자의 상심을 위로해준 유득공 같은 참 스승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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