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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SNS서포터즈 - 것대산 봉수대

나라의 위기를 알리는 통신망

  • 웹출고시간2017.04.26 18:02:21
  • 최종수정2017.04.26 18:02:21
[충북일보] 청주의 봉수대는 높이 484m의 것대산에 있다. 봉수대는 봉화대라고도 부르는데 봉화를 올리는 곳이라 하여 봉수대가 있는 산을 봉화산이라고도 한다. 것대는 상당산성의 남쪽에 있는 마을 이름이며 마을의 뒤쪽에 있는 산이 것대산이다.

것대산에는 것대마을에서 명암동 중봉재로 넘어가는 것대고개가 있으며 상봉재라고도 한다. 상봉재는 청주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 봉화대 바로 아래에 있다. 지금은 패어글라이딩을 하는 활공장이 옆에 있어 봉화대까지 자동차로 갈 수 도 있다.

것대산 봉수대는 1894년 봉수제도가 폐지되고 나서 방치되어 없어진 것을 2009년에 굴뚝과 방호벽을 세워 재현한 것이다. 봉수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국가의 안위를 위한 통신수단이었다. 봉(烽)은 봉화를 올려 연락하는것을 말하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봉수대는 지형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적의 동태를 조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봉수대에서 보이는 문의방면

것대산 봉수의 설치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봉수제도가 완비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주 것대산의 봉수는 해안이나 국경에서 서울 한양에 이르는 조선의 5개 노선중 경남 남해에서 출발하는 제2노선에 해당하는 것으로 남쪽 문의의 소이산과 북쪽 진천의 소을산을 이어주는 곳이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로 아무 일 없음을 알리고, 적이 출현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적이 국경을 넘으면 횃불 4개, 적과 아군이 교전을 하면 횃불 5개를 올리는데

봉수대에서 보이는 진천방면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했다. 만약 신호가 불가능할 때에는 봉수대에 배치된 군사가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알리기도 했다. 이렇게 전달된 신호는 서울 남산의 봉수대까지 전달됐다. 봉수는 조선의 안위와 관련된 중요한 국가기간 통신망이었던 것이다.

것대산 봉수에는 별장 1명과 감관 5명, 봉군 25명, 봉군보 75명이 교대하며 지켰다. 봉수대의 신호에 대해 수령에게 알리면 수령은 관찰사에게, 관찰사는 병조에 보고했다. 조선의 봉수군들은 출퇴근이 용이한 인근 주민들을 차출했는데 그 신분이 낮고 일이 고달퍼 천하게 여겼다고 한다.

것대산 봉화제

것대산 봉수대에는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조선 영조때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다. 영남의 여러 고을과 합세해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청주읍성과 상당산성을 점령한 이인좌가 봉수대에 신호를 올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다. 봉화대에는 선이라고 하는 딸과 사는 목노인이 봉화둑 지기로 있었는데 군사들이 목노인을 참살했다고 한다. 마침 딸 선이는 청주고을로 자리를 팔러간, 사랑하는 사람인 백룡를 마중하러 나가 있었다. 비명소리를 듣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 급변이 났음을 직감해 봉화둑에 올라 불을 당기려는 순간 군사들이 쫓아와 선이도 참살했다. 청주에서 돌아온 백룡이 목노인과 선이의 죽음을 보고 돌아가는 군사들을 기습 처리했다. 목노인과 선이를 무명천에 싸서 봉화불 속에 넣어 화장하고 떠났다. 이렇게 오른 봉화는 진천 소을산을 거쳐 서울에 전달돼 조정에서도 이인좌의 난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인터넷 정보 통신발달의 전성기에 사는 지금 것대산을 보며 우리나라 통신발전의 의의를 되새겨본다.

/ 청주시 공식블로그(최고닷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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