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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4.23 14:24:31
  • 최종수정2017.04.23 14:24:31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주비위 간사

벌써 더워진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 것일지 모른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두 세 살 형제 아이가 걷고 있었다. 물끄러운 목욕탕 여기 저기를 느릿한 걸음으로 움직거리는 그 동작에 사람들은 곁눈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은 아이가 미끌 넘어지는 일이 생겼다. 온 사람들의 곁눈이 그 순간 그 아이에게 쏠렸다. 등짝에 그림 그린 그림 형제도, 여든을 바라볼 듯한 노인 어른도, 솜털 보송한 고등학생도 그 아이의 뒤뚱한 미끄러짐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곁눈으로 흘깃하던 그 모든 사람들은 그 아이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다. 뒤뚱이는 모냥이 너무 앙증맞아서. 두 세 살 형제의 걸음걸음이 너무 귀여워서. 사람들은 흘깃흘깃 그 아이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고, 그래서 다칠까 걱정되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적나라(赤裸裸)한 남탕(男湯)의 순간 고요가 물 끼얹듯 그렇게 정지되었다. 그것이 태초의 마음이었을까· 그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통의 선함이었을까· 정지 장면을 두고 두 달을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니 그래도 세상은 살맛나는 곳이라는 의미가 곱씹어진다.

모두들 그렇게 세상에 왔을 것이다. 뻘건 핏덩이로 '으앙'하며 숨터지며 엄마에게서 왔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걸음마를 배우며 스스로 걷는 자기 걸음을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첫 걸음, 발뗌에 사람들은 흘깃 곁눈을 두었고, 그 불안한 듯 어색한 걸음에 혹시나 넘어지잖을까 마음을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의 휘청거림에 벌거벗은 몸뚱이들이 우르르 그 아이에게 뛰어갔을 것이다.

누구는 벚꽃대선이라더니 이제는 장미대선이란다. 가식과 허위와 그 포장 속에 진실은 어딘가 숨어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부끄럼을 모르는 그 아이의 뒤뚱거림에 우르르 몰려든 어른들을 보며 그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놀랬던 것 같다. 벌거벗은 어른들의 우르르 몰려듦에 아이의 놀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그 아이는 또 하나 세상의 포장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몸짓과 눈길에는 거짓은 없었다. 다만,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에게는 또 다른 신기함이었을 것이다. '저 아저씨들이 왜 저러지·'라며 눈이 휘둥그래졌을 것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잖은 적나라한 그 풍경은, 벌거숭이 임금님도 아니요, 뻘거둥이 빨갱이도 아니다. 그저 사람이고 세상이고 남탕의 끓탕같은 정지 장면이었을 뿐이다. 적나라는 적의 나라가 아니다. 빨개둥이일 뿐이지 빨갱이도 아니다. 그렇게 벗은 세상을 우리는 어쩌면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벗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언제부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벗은 모습을 흘겨보며 곁눈주며 딴 생각과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건 아닐까·

무관심한 척하며 외면하던 세상이 두 세 살 뒤뚱이는 아이 걸음이라면, 아직 우리는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벌거벗은 나와 벌거벗은 그가 다르잖음을 잊고 있을 뿐이다. 외면하고자 애쓰고 있을 뿐이다. 그럴 이유가 없다. 보통의 선을 가진 사람들의 적나라함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편안함의 정지 화면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 세상이 어쩌면 장미대선이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악어의 눈물일 것이다.

두 세 살 형제의 뒤뚱걸음은 벌써 두 달 전의 한 장면이었다. 그 아이의 걸음걸음이 더 튼튼 든든해졌을 봄은 또 이만큼 다가와 저만큼 가고 있다. 나목(裸木)의 적나라함이 이제 신록(新綠)을 향해 녹색 그늘의 서늘함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기억하자. 그렇게 잊지 말자. 돌고돌아 다시 그 자리에 왔을 때의 적나라함이 세상에 첫울음 터트렸던 처음이었음을 기억하자. 세상은 그렇게 여러 눈과 마음이 바라보며 지켜주는 곳이기에 그 적나라함에 부끄럽지 말고, 부끄러워하지도 말자.

오늘 아침. 내게 다가온 세상은 어떤 풍경이었는가· 10년전, 100년전에 내게 주어진 첫 장면은 어떤 풍경이었는가· 기억에 없다면 주변을 둘러보자. 남탕의 적나라함에 벌거벗은 내 모습을 직시하자. 그러면 세상이 또 보일 것이다. 적나라하게. 부끄럽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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