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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4.19 13:53:37
  • 최종수정2017.04.19 13:53:37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박달재는 왜 울고 넘는 고개일까· 고개가 험하여 힘이 들어서 울면서 넘는 고개라면 '울며 넘는 고개'라야 하는데 '울고서야 넘는다'고 표현한 것은 울음의 원인이 고개를 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연에 있음일 것이다.

그 사연은 바로 박달이와 금봉이의 슬픈 사랑이야기로 엮어진 박달재의 전설인데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의 노랫말은 박달재에 전해오는 전설을 소재로 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노래가 나온 이후에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에 내용이 더 추가되고 각색되어 이야기가 더욱 충실해진 것으로 생각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조 중기에 경상도에 박달이라는 젊은 선비가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하여 한양으로 가던 중, 이 산골의 벌말(오늘날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서산에 해는 지고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벌말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박달 도령은 벌말의 한 농가에 들어 잠자리를 청하게 되는데, 그 날따라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 높이 떠, 한적한 마을을 비추고 객지의 밤이 주는 야릇한 마음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박달 도령은 방문을 열고 나와 산골의 고고한 달빛아래 서성거리고 있을 때 이 집 주인의 딸 금봉이라는 처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박달 도령은 금봉이의 연연한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고 금봉이도 박달도령의 늠름하고 준수한 태도에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뜻과 뜻이 맺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 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박달 도령은 과거에 급제한 뒤, 혼례를 올리기로 굳게 맹세하고 다음날 날이 밝자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떠났다. 정성을 다해 몰래 싸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봉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 아흔 아홉 굽이를 꺾어 돌며 눈물을 뿌렸다. 그러나 한양에 도착한 박달 도령은 만사에 뜻이 없고 오로지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느라 공부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 애틋한 그리움을 시로 써서 달래 보기도 했으니,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되는구료

천등산 꼭대기서 그 고운 모습 못 볼진대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갈거나."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몇 일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그리움 내키는대로 평동을 가자니 낙방의 초라한 모습을 금봉이에게 보일 수 없어 가슴을 태웠다. 한편 금봉이는 박달을 보낸 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달 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아흔 아홉 굽이를 오르고 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금봉 아가씨에 대한 그리움에 지친 서울의 박달 도령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풀죽은 모습으로 벌말에 돌아온다. 그러나 금봉 아가씨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절망에 빠진다. 실의와 허탈감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넋을 잃은 박달 도령 앞에 죽었다던 금봉 아가씨가 화사한 옷차림으로 나타나 고갯길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너무 기뻐 정신없이 따라가 와락 끌어안았는데, 순간 박달 도령은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만다.

금봉 아가씨의 환상에 박달이 떨어져 죽은 고개라 하여 '박달령' 또는 '박달치'라 불렀다는 것이다. 원래 이 고개는 똑 같은 고개가 둘이 있다고 해서 '이등령'이라 불렀다고 하며 <대동여지도>에도 그렇게 표시되어 있다. 그 높디높은 박달재에 박달과 금봉의 숭고한 사랑이 박달재만큼이나 높아, 이루지 못한 그 사랑 노래가 오늘도 구성지게 울러 퍼지고,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애끊는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고 지니 울고 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린 단종이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 가던 중 박달재를 넘으며 슬피 울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박달재를 넘어 베론 성지로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이래저래 울고 넘어야 할 박달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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