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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4.12 14:46:20
  • 최종수정2017.04.19 13:53:31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충청북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제천을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박달재! 굽이 굽이 오르다보면 박달재 휴게소가 가까워지고 '울고넘는 박달재'의 구성진 가락이 울려 퍼진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여 걸어서 다녀야 했던 옛날에는 평지 길도 가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고갯길은 얼마나 힘이 들까· 그래서 구름도 쉬어 넘는다 하여 '추풍령 고개', 하늘을 나는 새도 쉬어 넘는다 하여 '새재'라고 부르지 않는가·

더욱이 고개를 넘다보면 도적떼를 만나 가진 것 다 털리거나 산짐승에게 변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으니 울고 넘는다는 말이 우리 민족의 마음 속 깊이 전해져온 고개의 이미지와 딱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둥산(실제는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1948년에 발표된「울고 넘는 박달재」는 반야월이 노랫말을 짓고 김교성이 곡을 붙인 것인데, 박재홍이 불러 크게 인기를 끌며 일약 대스타가 되었고, 노래에 담긴 서민적인 정서가 공감을 얻어 이후로도 국민가요로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2005년 한국방송공사의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방송 20돌을 맞아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불린 노래를 선정했을 때도 1위로 선정되었으며 오늘날 제천 지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일까·

대중가요 작사가이며 가수로 유명한 반야월(半夜月)은 본명이 박창오(朴昌吾)이며, 반야월은 그의 필명이다. 대중가요 가수 시절에는 진방남(秦芳男)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1938년 각 레코드 회사들이 신인발굴을 위해 경쟁적으로 열었던 콩쿠르 중 경상북도 김천에서 열렸던 태평 레코드 대회에서〈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으로 입상하여 가수로 데뷔한 그는 가수 시절부터 이미 노래보다는 작사에 더 소질을 보이다가 이후 완전히 가요 작사가로 변신하여 미발표곡 2,000여 곡을 포함한 4,500여 곡의 가요를 만들어 한국의 작사가들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야월이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의 가사를 짓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8·15 해방 후인 1948년 반야월 선생이 남대문악극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지방 공연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충북 충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제천 공연을 하러 비포장도로인 박달재를 넘어 가다가 트럭의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박달재에서 타이어 바퀴를 갈아 끼우고 있는데 지나가는 촌로(村老)가 있어 고개 이름을 물으니 '천둥산 박달재'라 하였다. 할아버지가 지나간 산모퉁이를 보니 부슬부슬 궂은비가 내리고 있는 속에 농부인 듯한 내외가 성황당 돌무덤 옆 장승 앞에서 울면서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때 얻은 시상을 메모해 둔 것에다가 이 고장 사람들에게서 들은 박달 선비와 금봉이의 전설을 엮어 노래 가사로 시화(詩化)한 것이 <울고 넘는 박달재>라는 것이다.

한편, 1944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의 마을 장정 13명이 징용으로 끌려가던 날, 동네 부인들이 정성껏 만든 도토리묵을 남편의 허리춤에 달아 주며 고갯마루 서낭당에서 이별했다는 사연도 전해 듣고는 노랫말에 포함하였다.

이 노래를 통하여 박달이라는 선비와 금봉이의 슬픈 사연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 속에 박달재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제천의 지역 홍보를 톡톡히 하게 되었으니 노래의 위력이 정말로 큰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제천시에서는 이 전설 속의 인물들을 박달이와 금봉이라는 캐릭터로 마스코트화 했으며 박달재휴게소 입구에는 노래 가사를 적어 넣은 박달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박달재 터널이 생겨 박달재를 넘는 일이 적어져 항상 아쉬움을 느꼈었는데 자동차가 터널을 지날 때도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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