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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대신 책 펴낸 '여든 네 살 작가'

한상희씨, 9년째 1인1책 펴내기 프로그램 참여
어머니의 삶 책으로 엮은 '억새풀 연가' 이어
지난해까지 3권이나 출판… "눈물로 쓴 편지"

  • 웹출고시간2017.04.02 20:17:05
  • 최종수정2017.04.02 20:17:16

한상희씨가 지난 31일 청주시 금천동주민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1인1책 펴내기 프로그램에 참여, 글쓰기 설명을 듣고 있다.

ⓒ 최범규기자
[충북일보] 9년 전, 한상희(여·84·청주시 금천동)씨는 그해 봄 이맘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동사무소에서 '1인1책 펴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이웃에게 부탁했다. 한 평생 가슴에만 담아둔 어머니의 한(恨)을 풀어달라고.

이웃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펜을 쥐어줬다.

그렇게 한씨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씨는 "내가 글을 쓸 줄 알면 내 속에 있는 한을 써볼텐데"라는 어머니의 말을 평생 되뇌며 살았고, 이제야 그 소원을 풀었다.

충주 노은면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한씨는 어머니의 웃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평생을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살았다. 아버지가 둘째 부인을 들인 뒤부터는 대놓고 구박을 당했다. 매를 맞으면서도 자식들을 품에 안고 지켰다. 그러다 집 밖으로 내쫓기기 일쑤였다.

한상희씨가 자신과 어머니의 삶을 담아 펴낸 수필집과 산문집.

ⓒ 최범규기자
한씨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잔잔한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억새풀'같다고 여겼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살았더라고. 사연 없고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마는."

80년 전 얘기를 쓰고 있자니 본인의 80여 인생도 참으로 기구해 헛웃음만 나더라.

한씨는 직업 군인인 남편을 만나 1남1녀의 자녀를 뒀지만, 결혼생활 4~5년 만에 남편의 외도로 외톨이 신세가 됐다.

5살 큰 딸은 친정집에, 3살 작은 아들은 음성의 언니네에 맡기고 홀로 서울로 향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서울에서 한씨는 택시 운전을 했다. 여성 첫 1호 택시기사였다. 고단한 일보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매일 밤마다 울었다. 그래도 몇 년만 고생하면 자식들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10년 동안 억척같이 버텼다.

하지만 불행은 또 찾아왔다.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내 직장을 잃었다. 그동안 번 돈은 고스란히 합의금으로 나가 수중에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한씨는 다시 청주로 내려와 행상 일을 했다. 머리에 한가득 짐을 이고 하루 종일 청주지역 시골 동네를 돌았다.

일을 마치고 나면 서 있을 힘도 없어 땅 바닥에 주저앉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은 동생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도왔다. 기특함보다 미안함이 컸다.

"어머니도 이렇게 살았소? 이런 게 인생이구려. 다들 그렇게 사는 갑소."

글을 쓰는 내내 중얼거린다. 그래도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다.

한씨가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3권. 어머니의 삶을 쓴 첫 책 '억새풀 연가'를 쓰기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책을 냈다는 것보다 어머니를 다시 곁에 둔 것 같아 기쁨이 더욱 컸다.

한씨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단다.

원고지에 글을 쓰다가도 제멋대로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어 펜이 엇나간다. 그래도 예전처럼 고되지는 않다. 오히려 신난다.

"그리운 사람도 많고, 가고싶은 곳도 많지. 다리가 아파 원체 마음대로 다닐 수가 있어야지. 세월 속 바랜 기억을 끄집어내는 낙으로 살아."

혀에 잠시 갖다 댄 한씨의 볼펜 끝은 조심스럽게 다시 원고지로 향한다.

/ 최범규기자 calguks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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