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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SNS 서포터즈가 소개하는 '망선루'

교육의 얼이 깃든 문화재

  • 웹출고시간2017.03.22 14:19:22
  • 최종수정2017.03.22 14:19:22

청주 중앙공원에 위치한 유형문화재 제 110호 망선루.

[충북일보] '교육의 도시' 청주 중앙공원에는 교육과 인연이 있는 문화재가 있다.

" 이 누에 올라 쉬노라니 먼 변방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구나 그지없이 넓은 하늘을 바라보니 문득, 마음은 넓어지고 정신은 평온해 진다 "고 조선초기 문인 이의무가 극찬한 누각 망선루다.

팔작 지붕

망선루는 유형문화재 제110호로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근대 교육의 산실이었던 곳이다. 전형적인 팔작 자붕에 겹처마를 했고 기둥은 전통양식인 배흘림기둥이다.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가운데를 불룩하게 해 건물의 안정미와 균형미를 돋보이게 한다. 전통적인 수키와 집으로 골 내림마루가 자연스럽게 내려오며 추녀가 날렵하다.

배흘림 기둥 형태를 볼 수 있다.

이층마루는 우물마루형태다. 우물마루란 우물정(井)자처럼 마루를 까는데 못을 쓰지 않고 가로, 세로로 짜 맞추는 형식이다. 기둥 위에는 기둥 머리가 있고 그위로 도리가 지난다. 용마루와 같은 방향으로 놓인것을 '도리'라 하고, 도리와 도리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을 '들보'라 한다.

망선루의 도리는 맨 밖에 있는 '주심도리'와 '중도리' 그리고 가운데를 지나는 '종도리'가 양쪽에서 대칭을 이룬다. 건물이 크기 때문에 용마루를 받치는 '대들보'가 4개, 대들보 위에 이를 보좌하는 '종보'가 4개 있다. 종보는 대들보보다 길이가 짧다. 주위로는 난간인 '현간'이 둘러져 있다.

옛 망선루 모습

복원할 당시 해체를 해보니 부식이 심하고 안정성이 없어 결국 3분의2 정도를 새 목재로 충당했다고 한다. 망선루(望仙樓)는 청주의 객사 동쪽에 있었는데 본래 이름은 취경루(聚景樓)였다. 서기 1361년 (고려 공민왕 1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청주에서 수 개월간 머물렀었는데 이때 과거를 취경루에서 치루었고 합격자 명단을 붙였다고 한다. 이때 급제한 자가 33명이고 그중에는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장원급제였다 하니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인물의 산실로 망선루가 친근히 다가온다.

이전 복원 모습.

서기 1461년 (조선 세조 7년) 청주목사 이백상이 중수하고 한명회가 이름을 망선루로 고쳤다.망선루는 하늘의 선녀 또는 신비한 경치나 은하수를 본다는 뜻이다. 망선루 옆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사방에 막힘이 없어 누각에 앉아 있으면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취경루'에 한껏 더 멋을 부린 것이 '망선루'다. 이후 청주목사 이섬이 중수하고, 청주목사 이수득이 보수했다.

일제 강점기인 1907년에 청주 최초의 공립학교인 청주보통학교 여자부 교사로 이용되다가 일제가 1921년 유도장인 무덕전 신축을 위해 헐어 서문동 골목에 쌓아 두었다. 1923년 광남학교 설립자인 김태희 등 청주청년회 청년들이 망선루 자재들을 사들여 남석교 언저리의 청주제일교회 (당시 청주읍 교회) 북동쪽으로 이건(移建)하고 청남학교 교사로 사용하다가 이후 세광고등학교 교사로도 사용됐다. 망선루에서 시작한 청주공립보통학교는 지금의 주성초등학교로, 청남학교는 지금의 청남초등학교로 그 맥이 이어져 온다.

본래 망선루가 있던 장소

망선루는 1999년 까지 청주제일교회 건물에 인접하여 교회의 교육관으로 사용되다가 너무 낡아 무너질 위험이 있자 1999년 11월 해체하여 2000년 12월 중앙공원 북쪽 척화비 뒤쪽에 이전 복원됐다.

문화재인 망선루의 복원은 본래의 위치에 하는 것이 최선이나 부지매입에 너무나 큰 예산이 들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본래 위치에서 멀지 않고, 청주동헌이나 충청병마절도사영문 등 옛 관아 문화재와도 연결 지을 수 있는 장점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해 중앙공원에 옮겨 짓게 됐다. 충청도 이남에는 고려시대 양식의 목조건축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청주 읍성 배치도

망선루를 언제 처음 세웠는지에 대한 기록은없다. 그러나 1999년 10월 망선루 해체과정에서 상량문 2매와 망선루 이건(移建)원인과 약사문 1매, 청주청년회 집행위원 및 청남학교 직원명단 1매 등 4매의 문서가 나왔다. 이중 망선루 이건(移建) 원인과 약사문에는 "남석교는 신라시조 박혁거세 원년 갑자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망선루 옛 이름은 취경루이니 남석교와 동년대에 영건(營建: 건축)된 것이다" 라고 기록돼있다. 1923년 망선루를 이건하던 당시 사람들은 "삼십갑자를 지켜온 건축물이 헐리어 걷어치우게 되니 우리 탄식의 긴 한숨이 절로 나고 피 눈물이 왈칵 흘러나온다" 고 했다.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망선루는 우리 것을 지키려는 분들에 의해 되살아나 청주지역 최초의 근대교육이 시작되고, 일제치하에서 한글강습, 집회 등 민족교육의 산실로 청주의 교육, 문화, 청년, 여성운동의 터전이 됐다.

고려 공민왕이 과거를 치룬 망선루에서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이 장원급제를 하고 일제치하 민족교육의 산실이던 망선루는 '교육의 도시 청주'란 명성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망선루가 있는 청주 중앙공원 옆에 있는, 청주의 명물로 소문난 튀기듯 구워 낸 호떡 집을 지나면 성안길이 나온다. 젊음의 거리 성안길에 들러 먹거리 볼거리를 즐기며 고려시대에 세운 철당간도 본다면, 청주의 옛 문화와 현대의 정취를 한번에 느낄수 있을 것이다.

/ 청주시 공식블로그(최고닷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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