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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3.16 15:06:25
  • 최종수정2017.03.16 17:48:40

최현정

다큐멘터리 작가

"아그야, 가서 탁배기 한 사발 받아 오랑께." 술 받아오라는 아버지 호령에 덜렁덜렁 주전자 들고 가던 곳, '술도가'. 가던 길도 멈추고, 노곤한 일손도 잠시 쉬어가는 탁배기 한 사발! 그게 또 사는 맛이었던 시절도 있다. 찌그러진 주전자에 투박하게 담아내던 막걸리가 그 편견을 걷어내고 한국의 술, 건강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 51개의 전통주 중 충청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12개의 전통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산 소곡주, 면천 두견주, 아산 연엽주, 계룡 백일주, 중원 청명주, 둔송 구기주, 금산 인삼주, 대전 송순주, 가야곡 왕주, 청원 신선주, 보은 송로주 등, 지역 특색과 문화, 역사를 반영하며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명주로 인정받는다.

주인의 손끝에서 맛과 향을 달리하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家釀酒). 그 술의 뼈대를 만드는 것이 바로 '누룩'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초고속의 시대가 왔다 하더라도 '발효'는 사람이 아닌 자연의 영역. 그 발효를 일으키는 열쇠가 바로 '누룩'이다. 사람이 심고 거두지만 자연이 키우는 것이 곡식이요, 농사가 생업인 사람들에게 술 빚는 재료는 다름 아닌 '곡물'이었다. 누룩을 나타내는 한자인 국(麴)자는 보리 맥(麥)자와 움켜뜰 국(匊)자가 합해진 형태인 이유도 그것이다.

전통주를 빚기 위해서 집안에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누룩디디기다. 꾸욱꾸욱 발로 디뎌 메주처럼 만들어 헛간 시렁에 얹어둔다. 누룩띄우기다. 눅눅한 헛간, 시간이 쌓이고 설렁설렁 바람이 지나가면 바윗장 같은 누룩에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바로 곰팡이가 내려앉는 것이다. 단숨에 찍어내는 공장 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느림의 시간. 빛과 열, 바람이 넘나들며, 이곳에 눌러 붙어 있던 미생물들이 누룩에 깃들고 술의 깊이를 만든다.

집집마다의 '맛'을 다스리던 것은 다름 아닌 '곰팡이', 갖가지 재료로 다양하게 빚던 '누룩'이다.

찹쌀가루에 약재와 여뀌즙으로 버무려 짚에 싸서 띄우는 백주곡, 통보리에 밀가루를 섞어 둥글넙적하게 빚은 오메기곡, 배꽃필 무렵 멥쌀을 곱게 갈아 물을 섞어 오리알 크기로 단단히 뭉쳐 만든 이화주곡, 통밀을 빻아, 물대신 죽으로 반죽한 죽곡, 녹두를 빻아서 찐 것을 찹쌀과 함께 반죽하는 백수환동주곡 등 다양한 누룩빚기를 통해서 우리 술빚기는 풍요로웠다.

'발효'라는 신비로운 힘이 빚어낸 한 잔 술의 비밀은 아주 작고 느린 듯 보이지만, 그 속에 처절한 경쟁이 있고, 강인한 생명력으로 번성하는 자연의 질서, '곰팡이'의 위대한 작업이다. 곡물의 녹말을 곰팡이의 효소가 당분으로 바꿔주고, 이 당분을 효모가 먹고 난 다음,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분해시킨 것이 바로 술이다.

우리 술 주조 문화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안타깝지만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 사케, 일본식 청주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 전통누룩 대신 일본식 누룩을 쓰게 된다. 우리나라가 생쌀이나 생밀을 쓰는 반면 일본에서는 쌀을 쪄서 기존에 자라있던 모든 균을 죽인 뒤 필요한 균만을 선별해서 배양하는 방식의 흩임누룩, 입국(粒麴)을 쓴다. 일본에서 수입되던 청주의 양이 한국에 청주공장을 세우고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면서 급격하게 줄었다. 결국 일본방식의 술 빚기가 이 땅에 이식되면서 우리 술빚기의 전통, 누룩 또한 그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일제강점기 주세법이 시행된 이후, 발효제로써 누룩의 역할은 점점 작아져서 90년대에 와서는 아예 누룩이라는 이름조차 국(麴)으로 흡수되었다. 영세한 양조장들이 하나 둘 통합되면서 대규모 공장이 되고, 술은 안전한 발효를 위해 '표준'이라는 틀에 끼워 넣고 일본식 입국을 썼다.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고, 양산화 되면서 막걸리 뿐만 아니라 전통주도 우리 누룩은 그 발효 실력을 의심받고 있다.

그러나 쉽게만 사는 세상에서 더러 여전히 누룩을 고집하는 뚝심있는 양조장도 있다. 그저 공장에서 찍어내는 술, 외국에서 건너온 술에 익숙해진 우리 입맛이지만, 옛 술의 복원을 통해서 잃어버린 미각을 찾으려는 노력이 점차 늘고 있다. 이 땅에 깃들어 내려앉은 작은 생명들,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이 피워낸 누룩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넉넉하게 만들어준 맛과 향, 그 긴 세월로 담근 깊고 은은한 울림이 우리의 문화유산임을 한번 쯤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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