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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전 대통령의 몰락 왜?-②김기춘 체제 후 절망의 길

보수화로 국민대통합의 실패 초래
원로 멘토 그룹 '7인회 멤버'
74세의 나이로 비서실장 발탁
"대통령 계신 곳이 집무실"
시대 뒤쳐지는 말로 국민 공분
정윤회 문건파동·세월호 발생
국회의원 "김 비서실장 체제
우파적 사고 못 벗어나"

  • 웹출고시간2017.03.13 21:37:03
  • 최종수정2017.03.13 21:37:03
①충북에 남겨진 박근혜 흔적

②김기춘 체제 후 절망의 길

③아스팔트 우파만 열광한 정권
[충북일보] 1952년 태어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줄곧 청와대에서 생활했다. 1970년 서강대학교에 입학해 1974년에 졸업했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 유학 중 1974년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자 귀국해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영부인 직무를 대행했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1998년 정계에 입문해 그해 4월 2일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됐고, 19대까지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한나라당의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2007년 한나라당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석패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 내내 한나라당 내 비주류를 이끌었다.

2011년 12월부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 혁신 작업을 지휘했고 2012년 제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8대 대선에서 51.6%의 득표율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득표율 48.0% 보다 많은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다.

그러나 정권 인수위 시절부터 숱한 인사 참사를 자초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를 시작으로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각종의 의혹으로 줄줄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3년 5월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인 미국에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했다.

◇과거의 인물 김기춘 발탁

74세의 김기춘씨가 2013년 8월 5일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취임 첫해 저도에서 휴가를 보낸 박 대통령의 회심의 인사카드로 해석됐다.

김 실장 체제는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유신의 공포'를 안겨줬다.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의 원로 멘토 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 멤버'로 일각에서는 안정적인 국정운용을 기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수를 기반으로 중도대통합을 천명했던 박 대통령의 극단적 보수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결국 김 실장 체제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정윤회 문건파동 숱한 사건이 터졌다. 그럼에도 김 실장은 "대통령은 어디든지 계신 곳이 집무실이다"며 시대와 동떨어진 말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박 대통령에게는 7인회 그룹보다 10여 살 많은 정치적 멘토가 있었다.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다.

그는 "큰 애 주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자네가 좀 처리해줘야 겠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박근혜 비서관에 발탁됐다. 최 이사장은 2013년 9월 사망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태박(胎朴)'들은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최 이사장이 사망하면서 박 대통령 주변에 목숨을 걸고 고언을 할 수 있는 참모가 없었다고 회상한다.

◇세월호 참사와 정윤회 문건 파동

집권 2년 차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국민들은 세월호 침몰사건 보다 '골든타임' 기간에 단 1명도 구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력이 확인됐다.

같은 해 11월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되면서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의 위험성이 폭로됐다.

정윤회 문건파동은 '비서실장 교체설'과 관련된 조사내용이 정상적으로 보고된 상황에서 보고자인 조응천(현 더민주 국회의원)·박관천 두명을 거꾸로 국기문란 사범으로 규정한 사건이다.

집권 3년차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리스트로 당시 차기 대선 후보로까지 꼽히던 이완구 총리는 사임했다. 이후 메르스 사태 부실 대응으로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자유한국당 소속 한 국회의원은 13일 통화에서 "2012년 대선 때 중도대통합 이미지로 대통령이 당선되고 초심을 지키며 정치를 했어야 했다"며 "하지만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 후 청와대는 각종 정책에서 우파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국민대통합을 이뤄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김동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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